[사설]부담은 늘고 치료는 못받고

  • 입력 2000년 8월 11일 18시 51분


정부가 제시한 ‘마지막 카드’에 의료계가 등을 돌림으로써 또 한 차례 의료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의 카드가 결국은 2조20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국민 부담이라고 할 때 의료소비자인 국민으로서는 부담은 부담대로 지고 의료 서비스는 받지 못하는 이중의 고통을 받게 됐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국민의 고통과 불편을 외면하는 의료대란은 당장 수습되어야 한다. 의료계는 폐업 투쟁말고는 의료계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동안의 투쟁을 통해 상당 부분 얻을 것을 얻은 만큼 더 이상의 집단폐업은 명분이 없다.

의료계는 정부가 보다 확실하게 약사의 임의조제 대체조제를 근절시킬 수 있도록 약사법을 재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약의 낱알 판매 금지를 5개월간 유예하기로 한 것도 재고되어야 한다고 한다. 구속 또는 수배중인 의협지도부의 석방과 수배 해제도 요구하고 있다.

임의조제 대체조제의 경우 지난 10여일 간의 분업 시행 과정에서 상당한 문제점이 드러난 이상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낱알 판매건은 한 번에 30알 이상씩 사야 하는 소비자 부담과 약국의 재고 처리 및 제약회사의 준비 기간 등에 비춰 일정 기간 유예기간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약국에서 일반약의 낱알로 임의조제가 이뤄질 경우 동네 병의원은 5개월 내에 모두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는 의사들의 우려에도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의협지도부의 석방 및 수배 해제는 법 적용의 형평성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의료계가 이를 폐업 철회의 조건으로까지 내세우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아무튼 이러한 정도의 요구 조건이라면 병원문을 열고도 얼마든지 대화로 풀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의료계도 정부가 어느 정도 전향적 자세로 돌아선 것을 인정하지 않았는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는 정부가 애초 의약분업의 아래 위 단추를 잘못 끼운 데 있다. 저부담―저급여―저수가의 비정상적인 의료체계의 개선 없이 명분만 앞세워 의약분업을 강행하려다 의료계 요구에 끌려 다니는 결과를 빚게 된 것이다.

적정한 진료를 위해서는 소비자가 적정한 부담을 져야 한다. 그러나 적정한 부담에 대한 공론화나 사회적 합의 과정이 생략된 것은 정부가 일의 선후를 그르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의료계는 집단폐업을 철회하고 정부와 솔직한 대화를 해야 한다. 그 대화를 통해 근본적으로 잘못된 보건 의료체계를 바로잡아 나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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