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종석/터닦은 공영의 장 꾸준히 다져야

  • 입력 2000년 8월 1일 18시 39분


이번 제1차 장관급회담은 남북관계가 화해와 공영을 향해 순항하고 있음을 보여준 중요한 회의였다.

6·15 공동선언의 실천을 위한 분야별 협의체 구성에 합의하기를 바랐던 입장에서 보면 다소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값진 성과를 일궈낸 회담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장관급회담의 운영 기조로서 민족의 공동이익을 추구하며 불신과 논쟁으로 일관했던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서 ‘신의와 협력’ 속에 ‘쉬운 일부터’ 실천해 나가기로 한 것은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대결에서 공존 공영으로 바꾸어 나가겠다는 최초의 공동 결의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한 사항들도 대개 큰 차이가 드러나서라기보다는 좀더 검토한 후 타결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제1차 회담은 다음 회담의 성공을 위해 꽤 많은 것을 비축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남북연락사무소 정상화와 장관급 회담의 사실상의 정례화로 나타난 당국간 대화기구의 상설화 결정이다.

4년 만에 남북연락사무소의 기능이 정상화된다는 것은 대화 채널의 복원을 의미하며 남북이 대화와 협력의 시대로 이행할 수 있는 중요한 바탕을 마련했음을 뜻한다.

또 정전위원회 무력화 이후 판문점을 긴장지역으로 만들고자 했던 북측의 전략이 수정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 기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며 민족 화해의 연결 고리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

장관급 회담의 정례화도 남북관계 개선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중요한 합의이다.

특히 제2차 회담을 8월 말에 평양에서 조기 개최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남과 북은 회담을 거듭해가면서 합의를 도출하는 이상적인 관계진전 방식을 택하였다.

즉 제1차 회담에서 6·15 공동선언을 실천해나갈 방법론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의하고 몇 가지 긴급한 핵심사안은 구체적으로 합의하되 나머지 사안은 곧 열릴 2차 회담에서 타결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지난 반세기간의 적대관계를 공존과 협력의 관계로 전환시키는 일이 한두 번의 회담으로 가능할 수 없다는 점에서 누적적인 회담 결과를 통해서 남북관계의 진전을 제도화하려는 이러한 움직임은 매우 바람직스러운 것이다.

끊어졌던 경의선을 연결하기로 합의한 것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민족사적으로 볼 때 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는 것이며 정치군사적으로는 남북대결의 상징인 휴전선이 긴장의 접점에서 화해와 협력의 연결점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물류비용의 감소를 통해 남북경협 활성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며 나아가 민족경제공동체 형성의 촉진제가 될 것이다.

남과 북이 이번 8·15 행사를 공동의 축제로 각각 열기로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이 합의는 우리 사회가 1980년대 후반부터 8·15가 되면 행사 문제를 둘러싸고 심한 내홍(內訌)을 겪어왔다는 점에서 남북관계 못지 않게 국내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매년 범민족대회를 둘러싸고 극렬 대립과 강경 진압 등으로 엄청난 사회적 역량을 소진해왔다.

그러나 이번 합의를 계기로 8·15 행사가 소모적 분열에서 벗어나 민족 화해와 통합을 위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시대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남과 북이 이번 회담에서 서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을 발휘하며 상당한 성과를 내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면에서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은 아니다.

아직은 상호 관심사와 명분, 그리고 그에 따른 우선 순위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전히 남북협상에서 소중한 원칙은 호양의 정신을 발휘하며 쌍방이 만족할 수 있는 공동 승리의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 회담이 보여준 것처럼 남과 북은 과속보다는 적정 속도를 내며 장기적으로 성과를 누적해 가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이종석<세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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