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이즈 약값 너무 비싸" 국경없는의사회 지적

  • 입력 2000년 7월 11일 00시 18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9일 개막된 제13회 국제에이즈 회의에서 전세계적으로 파급되고 있는 에이즈에 대한 갖가지 대책이 심도 있게 논의됐다고 AP 등 외신이 10일 전했다.

참석자들은 특히 전세계 5, 6개의 초대형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자사 이익을 위해 후진국 에이즈 환자들이 도저히 구입할 수 없는 높은 가격의 치료약을 유통시켜 온 것을 강하게 비판한 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인도주의 의사단체인 국경없는 의사회(MSF)는 회의 개막에 앞서 에이즈 치료약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가난한 국가들이 국제교역법상의 허점을 노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MSF는 “브라질 등 8개 개발도상국에서는 에이즈 치료약의 최저가가 미국과 비교할 때 평균82%나 낮았다”면서 “이는 제약업체들이 가격을 인하한 때문이 아니라 이들 개도국들이 상표등록이 돼있지 않은 약을 도입하는 등의 비공식적인 방법을 이용해 치료약을 조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브라질 정부는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말까지 8만명 이상에게 에이즈 치료약을 제공해 에이즈 관련 사망률을 50% 이상 낮출 수 있었다고 MSF는 말했다.

MSF는 특히 2006년 이후에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에 따라 에이즈 치료약 제약사 등 모든 약품 특허권자들에게 20년간의 특허 보호기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들은 이 과도기를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제 에이즈백신연구소(IAVI)는 개도국들에 에이즈 치료약의 가격을 최저로 정하는 대신 부유한 국가에서는 제약사가 개발비용을 보전할 수 있도록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차등가격제’를 제안했다.

카이론사(社)와 아벤티스 파스퇴르사(社) 등 서구 대형 백신회사도 이 계획에 대해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으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도 이를 환영했다.

에이즈 백신 개발을 위해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를 기부한 마이크로소프트(MS)사 빌 게이츠 회장은 이날 비디오테이프로 공개된 메시지에서 이 계획에 찬성한다며 “진열장에 있는 백신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전 부인이었던 위니 만델라는 이날 에이즈 치료약 가격 인하를 촉구하는 집회에 참석해 “정부는 제약사의 이익보다 국민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며 “정부는 상표등록이 돼 있지 않은 값싼 에이즈 치료약을 수입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며 국내 제약업체가 특허권 없이도 에이즈 치료약을 생산할 수 있도록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천명의 시위대는 집회가 끝난 뒤 ‘에이즈 바이러스 양성반응’이라는 문구가 적힌 옷 등을 입은 채 거리를 행진하며 에이즈 치료약으로 폭리를 취하는 제약사들을 비판했다.

이날 회의와는 별도로 세계 최고의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률을 기록하고 있는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페스투스 모가에 대통령은 서방 언론과의 회견에서 “인구 160만명 가운데 36%가 에이즈에 감염돼 나라가 파멸 위기에 직면했다”고 호소했다.

보츠와나 등 에이즈의 만연으로 위기에 처한 아프리카 국가들을 돕기 위해 세계은행은 ‘아프리카 에이즈 프로그램’에 5억 달러(약 550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칼리스토 마다보 세계은행 아프리카 지역 본부장이 밝혔다. 이같은 지원금은 세계은행의 자매기관인 국제개발협회(IDA)가 지급하게 되며 아프리카는 10년 뒤부터 40년간에 걸쳐 이를 갚게 된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