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래정/답답한 勞 못믿을 政

  • 입력 2000년 7월 9일 18시 49분


노사정위원회가 10일 열린다. 노사갈등을 중재하는 게 정부여야 할 터인데 정작 사(使·은행장)는 빠졌다. 은행들의 뿌리깊은 정부 의존체질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동시에 관치의 그늘을 입증하는 현상이다.

1, 2차 협상은 국민의 지대한 관심이 무색할 정도로 소모적이었다. 노조는 관치청산을 화두에 올렸고 정부는 ‘관치는 없다’고 반박했다. 관료들의 ‘말바꾸기’ 논란도 평행선을 달렸다.

파업 은행에 돈을 넣어두고 있다는 한 기업체 사장은 “정부 노조 모두 답답하다”고 비난했다. 검증할 수 있는 사안들을 놓고 왜 사실(事實)을 확인하지 않느냐는 지적. 자기들 주장만 늘어놓으니 은행이 마비되고 애매한 고객들만 피해를 본다는 불만이었다.

금감위를 출입해온 기자는 정부가 ‘말을 바꾸지 않았다’는 주장을 인정하는 편이다. 그러나 총선 등 외부상황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애매한 발언을 금융정책 사령탑들이 자주 쏟아냈던 것은 분명하다. 외환위기 직후 ‘신축적’인 발언은 모두에게 ‘경고’일 수 있었지만 구조조정 ‘피로증후군’이 만연한 지금은 정책의 예측성만 떨어뜨린다.

노조측도 시장안정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무조건 관치로 몰아쳐선 곤란하다. 채권전용펀드 등 시장개입이 없었다면 기업 도산이 이어져 은행부실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시장원리를 뿌리내리기 위해 노조가 관치청산특별법을 요구한다면 고용조정과 부실은행 도산 등 냉혹한 시장원리도 감수해야 한다.

파업결정에 동참했다가 업무 복귀로 돌아선 은행원들도 여전히 정부를 불신한다. 다만 명분보다는 ‘은행살리기’라는 실리를 좇을 뿐이다. 10일 노사정위원회가 구조조정의 원칙을 분명히 하고 은행원들이 받을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장이 되길 기대해 본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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