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勞-政 갈등의 본질

  • 입력 2000년 7월 3일 19시 01분


금융노련이 찬반투표를 거쳐 11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고 고속철도건설공단 환경관리공단 전국사회보험 노조 등이 파업에 들어갔거나 파업을 예고했다. 금융경색 등으로 경제가 어려운 시점에서 금융 총파업은 자칫 대내외 경제활동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이런 마당에 산하노조 파업의 강경 진압에 격앙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총력 지원하겠다는 자세로 나와 걱정된다.

의료계의 집단 폐업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집단이기주의에 대해 경고 발언을 하면서 노사정책이 강경 진압 일변도로 흐르는 인상이다. 이 때문에 노정(勞政)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노정갈등이 증폭되는 이유는 뭔가. 의료대란을 비롯한 최근의 몇 가지 사례에서 보았듯이 정부의 정책입안 및 집행과정이 너무 엉성한데다 이해가 상반된 집단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정부가 노조를 설득하려면 고통분담의 모범을 보여야 하고 큰 원칙을 놓고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된다. 금융노련이 총파업 움직임을 보이자 정부는 공적자금 투입은행을 합병하더라도 조직 및 인원 감축을 하지 않겠다는 임기응변식 태도로 나왔다. 구조조정을 하겠다면서 인원감축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 얘기다. 정부는 치밀한 계획없이 밀어붙이다가 혼란이 오면 일단 파업만 피해놓고 보자는 식이다.

금융 및 공기업 노조원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나무라고 고통분담을 호소하려면 정부 여당부터 당당해야 한다. 공기업에 민주당 공천탈락자를 낙하산식으로 계속 내려보내면서 금융 및 공기업 종사자의 희생만 요구하니 말발이 서지 않는 것이다.

아직도 구시대의 미몽에 사로잡혀 공권력의 지원을 기대하며 노사교섭에 불성실한 사용자는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서울지법 판사가 롯데호텔의 불법파업을 주동한 노조관계자 4명의 영장을 기각하면서 ‘사용자의 불성실한 교섭으로 인해 쟁의에 이른 점을 참작했다’고 밝힌 것은 공권력과 사용자의 각성을 동시에 촉구했다고 볼 수 있다.

노사정위도 이런 식으로 놓아두어서는 안된다. 최근 민노총 등의 성명서를 보면 노사정위를 인정하지 않고 노동부의 역할을 촉구하고 있다. 노동단체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유명무실해진 기관이라면 그 존재나 기능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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