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신문배달원서 벤처기업가로 이상운 네티존사장

  • 입력 2000년 6월 25일 18시 37분


"오전 3시에 일어나 동아일보를 배달하면서 인생의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 시간에도 나보다 먼저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부턴 ‘새벽을 내가 열자, 세상을 내가 깨우자’는 생각을 가지고 부지런히 일했죠.”

요즘 급성장세를 거듭하는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업체 네티존의 이상운사장(33). 굵은 손마디, 유행과 상관없는 옷차림, 구수한 말투는 여느 벤처회사 사장과 딴판이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생활고 때문에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주먹에 단돈 5000원만 쥐고 상경했다. 지금은 국내 4위의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회사를 거느린 사장님.

“서울에 연고도 없었죠. 먹여주고 재워준단 말에 넘어가 앵벌이 조직에서 반 감금 상태로 한달 동안 구걸도 했습니다. 간신히 빠져나와 중국집 배달을 했죠.”

그러다 시작한 것이 건설현장 전기공사업체의 현장공사. 나이가 어려 받아주지 않아 형님의 이름을 도용해 간신히 취업했다. “어느날 인텔리전트빌딩시스템 하는 사람들이 양복 입고 일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나도 저런 빌딩숲 속에서 멋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됐죠.”

스물한살이 되던 해. 그는 동아일보 배달을 시작했다. 새벽 배달에서 번 돈은 뒤늦게 다니기 시작한 학원비로 썼다. 직장에서 받은 월급으로 동생 세 명의 뒷바라지를 했다.

22세에 처음 회사를 세웠다. 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낯설었던 인텔리전트빌딩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했다. 직원 60여명을 거느린 큰 회사로 키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3년 뒤 연쇄부도에 휘말려 한번의 시련을 겪었다. 90년대초 재기했을 땐 이동통신회사의 기지국을 건설해주는 회사로 업종을 바꿨다. 얼마 안 가 무선호출기 휴대전화 등 이동통신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통신시장은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무한합니다. 외환위기가 오면서 새로운 사업아이템을 고르던 중 인터넷 세상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미국에 가서 보니 근거리통신망(LAN)방식 초고속서비스라는 게 눈에 띄었다. 사무실에서 쓰는 LAN을 아파트에 깔면 100명이 풍족하게 쓸 수 있는 서비스. 사무실에서처럼 주민들끼리 서로 사이버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점도 독특했다.

“산적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었죠. 6개월여에 걸쳐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몰렸을 때 트래픽을 분산해주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장비설치 비용을 다른 회사의 25% 이하로 줄이는 비법도 마련했죠.”

그래서 승산이 있었다.

“마니아들이 하루에 30분씩 매일 쓸 경우 전화요금을 계산해보니 3만8000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보다 싼 가격에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상품을 내놓았습니다.”

99년 3월 국내 최초로 월정액 3만원짜리 상품이 탄생했다. 통신요금과 인터넷요금을 하나로 묶은 상품을 내놓은 것은 네티존이 처음. 그후 인터넷 사용자가 늘면서 한달 2만원 이하로 사용료를 내렸다. 지금까지 네티존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없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일반 가정에 진정한 사이버 세상을 열어주는 것. 아빠는 인터넷TV로, 엄마는 웹폰으로, 자녀들은 PC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사이버 세상이다. 현재 전국 1200개 아파트 단지 100만 세대에 서비스를 제공할 채비를 갖췄다. 연말까지 1600개 단지 160만 세대로 늘어난다.

“앞으로는 100Mbps 광케이블을 아파트단지에 공급할 생각입니다. 진정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려면 누구든 사이버도시 정도는 세울 수 있어야죠.”

<정영태기자>ebizwi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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