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병원 문 열고 '비용' 얘기해야

  • 입력 2000년 6월 22일 19시 27분


정부와 의료계의 협상이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서 사상 초유의 의료대란이 자칫 국가비상사태로 치달을 조짐이다. 20일부터 시작된 병의원들의 집단폐업을 전후해 이미 조기분만한 신생아가 숨지는가 하면 병원을 찾아 헤매던 노인들이 사망하는 등 온갖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벌써 나흘째를 맞은 집단폐업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의료대란을 넘어 전국을 재앙으로 몰아넣는 ‘의료 공황’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다행히 의대 교수들이 당초 오늘부터 병원을 떠나기로 했던 것은 유보했다지만 비상체제로 며칠을 더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의료계에 거듭 촉구한다. 정부와의 협상은 협상대로 해나가더라도 병원 문은 당장 열어야 한다. 폐업을 철회하는 것은 곧 정부에 대한 항복이라는 식의 강경론은 거둬야 한다. 그동안의 ‘투쟁’만으로도 의료계의 주장 및 의약분업의 문제점들이 상당부분 부각된 만큼 병원 문을 연다고 그것을 의사측의 패배로 받아들일 국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의사협회의 내부지침이라고 보도된 ‘5∼7일간의 타협 없는 폐업 투쟁’을 고집한다면 국민은 의사측의 정당한 주장에마저 고개를 돌릴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의사들의 집단폐업은 어떠한 이유,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정부 여당에 촉구한다. 의료계의 불만을 미봉책으로 넘기려 해서는 안된다. 약사의 임의조제를 근절해 의사의 진료권을 보장하는 것은 중요하다. 대체조제, 의약품 분류, 약화사고의 책임 등 의약계의 이해가 걸린 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일도 미룰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보다 근본적으로 의약분업에 따른 ‘비용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현 의료대란의 가장 현실적인 원인은 약을 취급하지 못하게 된 의사들의 소득감소에 따른 위기의식에 있다. 그동안은 약을 팔아 낮은 의료수가를 벌충하고 수입도 올릴 수 있었는데 의약분업에 따라 진찰과 처방만 해서는 살아남기조차 쉽지 않으리란 위기의식이 팽배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위기의식에 대한 근본적 처방이 따라야 한다. 처방에는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따라서 정부 여당은 그 비용을 의료계와 협의해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소득수준 및 국가 재정형편 등에 비추어 어느 선까지 지출할 수 있을지 합의를 구해야 한다. 의료계는 폐업을 철회하고 보다 현실적인 비용의 공론화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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