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송두율/'하나된 미래' 관용으로 열자

  • 입력 2000년 6월 13일 19시 17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독일 언론의 보도에는 흥미로운 주장이 들어있다. 그들은 남북한의 통일을 한반도 주변 강대국 가운데 어느 나라도, 심지어는 남북한 지도자도 바라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상회담 때문에 달아오른 열기 가운데에도 정상회담 이후에 올 것만 같은 커다란 실망을 은근히 걱정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어렵사리 맞은 이번 기회가 남북간의 화해, 나아가 통일로 나아가는 길 위에서 커다란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그 어느때보다도 크다.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한 국제정치적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그러나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중국방문, 김대중대통령의 일본방문, 곧 있게 될 러시아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평양방문 등으로 연결되는 일련의 움직임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통일에 긍정적인 분위기만을 조성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미 일 러 중이 겉으로는 그러한 분위기를 마련해 줄 것처럼 다짐하고 있지만 이는 역시 외교적 수사이고 본심은 분단체제의 보다 효과적인 관리쪽에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어렵게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무엇보다 남북의 국제정치적 역량을 극대화시키는 전기가 돼야 한다. 독일통일이 유럽의 냉전구도 해체와 맞물려서 가능했다는 점을 상기할 때 한반도를 둘러싼 현재의 국제정치적 역학관계는 우리의 통일을 어렵게 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이러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 우리가 민족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그러한 능력까지 갖고 있다는 것을 주변 강대국에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분단 반세기는 통일에 걸었던 희망과 정비례한 실망과 환멸의 기록일 수도 있다. 자나깨나 통일을 이야기하는 한국인들은 통일을 이룩하지 못한 반면 통일이야기를 하지 않던 독일인들은 이미 통일을 달성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남과 북은 과연 어떻게 서로를 대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섞인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된다.

남과 북이 꼭 같다면 통일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을 것이고, 서로 완전히 다르다면 통일을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분단 반세기동안 남과 북에서 각각 달리 구축된 경험세계로 인해 남과 북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차이점도 많이 생겼다. 남과 북은 상대방을 각각 ‘자기속에 있는 타자’로서 바라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기와 똑같지 않으면서도 남이 아닌 타자로서 상대방을 대할 때 남과 북은 관점을 서로 바꾸어 볼 수 있는 합리성과 함께 관용과 여유를 배울 수 있다.

이렇게 될 때 남과 북은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얻게 된다. 이러한 지혜는 ‘7·4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속에서도 발견된다. ‘사상 이념 제도의 차이’를 넘어서 ‘민족대단결’을 추구한다는 원칙이나, 남북관계는 다른 나라와의 관계와는 다른 ‘특수한 관계’라고 규정한 것이 바로 ‘자기속의 타자’라는 인식적인 바탕을 보여주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러한 철학을 다시 한번 확인해서 이에 바탕한 실천의 길을 열어주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통일이라는 말을 들을 때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은 과거에 하나였던 우리의 삶을 복원하는 문제이다. 그래서 이산가족 문제는 항상 통일이 이야기될 때마다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잊어서는 안될 문제는 통일된 세계가 어떠한 세계가 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반성이다. 이러한 자기성찰과 반성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통일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희망이면서, 미래에 등장할 세대들에 대한 무거운 책임도 된다는 점이다. 한반도에 살게 될 미래의 세대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화해된 조건 속에서 살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의 책임이다.

남북정상회담은 ‘자기속의 타자’라는 발상 속에서 남북이 관용과 연대를 통해 새로운 삶의 원형을 함께 개발하고 창출하는 계기로서 온 겨레의 눈에 비쳐져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통일은 근시안적인 ‘통일비용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언젠가는 남북이 함께 살아야 할 ‘미래의 고향’이 있다는 낙관을 온 민족의 가슴속에 길이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송두율<독일 뮌스터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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