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수형/판사도 인간이라지만…

  • 입력 2000년 6월 8일 19시 43분


퇴근길에 대법원 청사를 나오다 눈길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 대법관을 보고 어느 청년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 판사도 신(神)은 아니었구나!” 미국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이 장면에는 역설적으로 판사는 판결에 있어서는 신에 가까워야 할 만큼 완벽해야 한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

평범한 시민 강창식(姜昌植)씨가 국회의원을 지낸 검사출신의 박병일(朴炳一)변호사를 상대로 벌여온 8년간의 법정투쟁을 보면서 재판은 무엇이고, 법관은 누구인지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강씨와 박변호사의 모텔 소유권을 둘러싼 민사재판에서 서울고법과 대법원이 95년과 96년 박변호사에게 승소판결을 내렸던 것은 대법원이 지난달 30일 그의 유죄를 확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오판(誤判)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것을 오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재판이란 ‘증거에 의해 나타나는 진실’을 가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씨가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그것을 입증하는 데 소홀했다면 재판 결과는 진실과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인간이 만든’ 재판제도의 숙명적 한계다.

중요한 것은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노력이다. 법조인들은 그것을 ‘절차의 정당성’에서 찾고 있다. 재판절차와 과정을 공정하게 함으로써 오판의 가능성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박변호사 재판은 절차의 정당성에 충실했는지를 반추해볼 여지도 있다고 본다. 혹시 재판과정에서 ‘조각배’였던 강씨 말보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을 줄줄이 선임한 ‘항공모함’ 박변호사의 말을 더 중시하지는 않았는지를 점검해봐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모든 권위와 가치가 무너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판사는 법과 양심, 그리고 정의를 지켜줄 마지막 보루로 인식되고 있다. 재판에 있어 완벽한 절차의 공정성을 유지하는 것, 그것은 인간을 심판하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이자 요구다.

이수형 <사회부>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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