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자녀의 부모 증오, 혹시 우리 아이는?

  • 입력 2000년 6월 4일 20시 04분


▼중학생 일기 통해 본 "엄마-아빠가 싫어요"▼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자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란 쉽지 않다. “어디 얘기 좀 해봐라”고 다그쳐봤자 자식들이 그리 쉽게 입을 열던가.

“아버지는 명문대를 가라며 엄하게 교육했다. 어머니도 내 머리가 나쁘다고 구박했다. 친부모라는 생각은 안들고 내 인생에 방해만 됐다고 생각했다.”

지난달말 경기 과천 부부 토막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붙잡힌 이모씨(24)는 평소 부모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오다 부모를 살해했다고 밝혀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차마 상상하기 조차 힘든 극단적 패륜범죄지만 정신과 의사들과 일선교사들은 부모에 대해 ‘죽이고 싶다’는 감정을 갖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연 사춘기 시절 일순간의 감정일까. 부모들에게는 문제가 없는 것인가.

다음은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끼리 쓰고 돌려읽는 ‘모듬일기’에서 뽑은 내용들.

“우리 엄마는 시험 못봤다구 옷사러 보내주지도 않는다. 솔직히 말해 정말 아니꼽고 더럽고 싸가지없다. 아무리 날 낳은 부모라지만 시험을 못보면 격려는 못해줄 망정 뒤집어놓고 패기나하구….빨리 커서 독립하고 싶다. 그리고 엄마랑 아빠랑 연락끊고 살거다.”(K중 2학년 S양. 2000년 4월 X일)

“PC방 갔다 집에 왔는데 엄마가 막 뭐라고 해서 기분이 다 잡쳤다. 준석이(가명)가 자기 엄마를 욕하던 기분을 알 것 같다. 어른들은 다 똑같다. 컴퓨터 좀 오래하면 고래고래 큰 소리를 치면서 하라는 숙제 다 해놓으면 잘 했다는 말 한마디도 없다.… 어른들은 우리를 눈꼽만큼도 이해못하면서 항상 우리위에 군림하려고만 한다. 역겹다….”(같은 학교 2학년 L군. 2000년 5월 X일)

그들의 속내를 보면 부모에 대한 증오심이 어떻게 생겨나서 자라나고 ‘전염’되는지 알 수 있다. 일기 속의 아이들에게 부모는 사사건건 자신의 행동을 간섭하고 잔소리나 해대는 귀찮은 존재일 때가 더 많다.

“얼마전 한 학생이 모듬일기장에 ‘엄마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적어놓은 것이 발견돼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고소득 전문직인데다 어머니는 평범한 주부인데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 더욱 충격적이었어요.”

서울 A중학교 C교사(37)는 부모에 대해 증오심을 갖는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을 부모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이 최근 전국의 중고교생 1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부모와 갈등이 많다’고 대답한 청소년이 열명 가운데 한명꼴이었다.

특히 청소년들이 부모들과 대화할 때 ‘부모님은 예전에 잘못한 것까지 다시 얘기한다’(38.2%)거나 ‘부모가 서로 상대에게 잘못이 있다고 다툰다’(26.5%)고 응답해 절반이상의 청소년들이 부모와의 대화에 심각한 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만 해도 부모의 교육방식에 대해 판단기준을 갖지 못하다 중학교에 들어온 뒤 또래와 함께 부모들을 비교 평가, 자기 부모에 대해 불만족스러운 점이 많을 경우 ‘부적격 판정’을 내린다고 지적한다. 부모가 엄격한 권위주의적,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지녔을 때 더욱 그러하다.

서울대의대 정신과 조두영교수는 “부모는 아무리 자식이라도 인격적으로 모욕을 주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란 자식의 성장을 도우면서 함께 성숙해가는 존재라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부모-자녀 효과적인 대화법▼

자녀들과 감정의 벽을 허물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서울여대 김유숙교수(교육심리학과)는 원만한 가족생활과 자녀의 성장을 위해서는 부모자녀사이에 건강한 의사소통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효과적인 대화방법을 제시했다.

①경청하는 자세를 가져라. 자녀를 알고 싶어하는 자세로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청이란 자녀가 이야기하는 것을 평가하기보다는 이야기 속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는 자세다.

②언어적, 그리고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민감해야한다. 그러려면 개방형 질문이 필수적이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않은 자녀에게 어머니가 “너 아버지를 싫어하니?”라고 묻기보다는 “아버지와 너 사이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말해줄래?”라고 물어보는 것이 개방형 질문이다.

③때로는 부모가 자신을 노출하는 것도 필요하다. 교사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자녀에게 부모는 자신들도 청소년시절 같은 고민을 했다는 것을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④구체적인 칭찬을 많이 하라. 피상적인 칭찬은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동생을 많이 사랑하는구나”라는 것보다는 “동생을 때려주고 싶을만큼 얄미웠을텐데 참았다는 말을 듣고 네가 동생을 얼마나 아끼는줄 알게 됐다”고 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⑤해결중심적 대화를 하라. 해결중심의 대화란 자녀가 생활에서 달라지기를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유심히 들어주는 대화다.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과 그것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대화가 될 때 자녀는 희망과 자신감을 갖게 된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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