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연구 6집]고려시대엔 재혼녀도 왕비됐다

입력 2000-05-30 20:30수정 2009-09-2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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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사람들은 왜 이혼했고 이혼 뒤엔 어떻게 살았을까. 거기엔 어떤 사회문화적 의미가 담겨 있을까.

최근 들어 미시사(微視史)와 생활사(生活史)에 대한 연구가 늘면서 고려 조선시대의 결혼에 관한 글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혼과 재혼을 본격적으로 다룬 논문을 드물었다. ‘민속학연구’ 6집(국립민속박물관 발행)에 실린 권순형 강릉대강사의 ‘고려의 이혼과 재혼’, 장병인 충남대교수의 ‘조선시대 이혼에 대한 규제와 실상’는 이런 점에서 값진 논문이다.

▽이혼한 고려 왕비는 어떻게 살았을까〓왕실의 이혼은 대부분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됐다. 이혼 당한 왕비는 친정아버지나 오라버니의 정권욕에 희생된 것이다. 이혼한 왕비는 주로 궁궐 밖의 별궁에 살았다. 왕이 경제적 지원을 해 준 경우도 있었다. 이는 정치적 이유로 폐비되긴 했지만 애정은 남아 있었기 때문. 공민왕비 혜비(惠妃) 이씨처럼 승려가 된 경우도 있다.

▽재혼해 왕비가 되다〓성종비 문덕왕후(文德王后) 유씨도 이혼녀였다. 과부가 된 여성이 재혼을 통해 왕비가 된 것엔 미모가 주효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적지 않다. 충선왕과 재혼한 순비(順妃) 허씨처럼. 재혼녀가 왕비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재혼이 악으로 취급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일반인도 마찬가지. 그러나 고려말부터 금지 분위기.

▽이혼이 자유로우니 고려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

고려 여성은 재혼시, 격이 떨어지는 결혼을 한 것이 아니었고 자녀를 데리고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권순형씨는 “이혼이 주로 정략적 경제적인 면에서 이뤄졌다. 따라서 이혼 재혼이 금지되지 않았다고 해서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조선시대 이혼의 종류

강제 이혼, 일방적 이혼, 협의 이혼 등 세가지. 강제 이혼은 부부중 한사람이 의절(義絶·배우자의 친족을 살해 구타하거나 간통하는 것)하거나 남편이 아내의 간통을 종용한 경우, 국가가 명령한다. 일방적 이혼은 여성이 칠거지악을 범했을때 주로 이루어졌다.

▽불법 이혼에 대한 처벌〓조선시대 남편이 합당한 이유 없이 부인을 내쫓으면 국가는 남자의 볼기를 치고 혼인관계를 회복토록 했다. 반면, 부인이 강제적으로 이혼 문서를 받아내면 그냥 여성의 볼기를 치고 말았다. 부인이 남편을 버리고 떠났으면 그것만으로도 정조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그보다 더 큰 벌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왜란 호란이 가져온 이혼

임진왜란 병자호란시 적군에게 성적만행을 당한 여성이 있었다. 남자들은 이들 여성과 이혼하려 했다. 과연 여성의 잘못인가. 현실론자 최명길은 인조대에 이혼 불허를 정책으로 끌어냈다.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효종대엔 송시열 등 성리학 명분론자들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이들 여성과의 이혼을 공식적으로 허락했다. 명분이 현실을 누른 것이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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