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 접대 백태]술과 여자로 "흥청망청"

  • 입력 2000년 5월 30일 20시 00분


"술에 취하고 여자에 몽롱해지고…."

한국 사회에서 접대는 '업무의 연장'이자 '생활의 일부'다. 특히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매일 밤 질펀하게 벌어지는 접대는 아직도 일과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필요악'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매일 밤 불야성(不夜城) 속에 벌어지는 향연은 386당선자들의 '광주 술판 사건'이나 최근 잇따라 터져 나온 공인들의 성추문 등 사회 도덕적 아노미 현상을 초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접대에는 우리 경제 구조를 왜곡시킬 만큼 막대한 부담이 뒤따른다. 공무원 사회나 일반 회사의 봉급체계에는 '업무추진비' '기밀비'' 정보비' 등 불투명한 비용이 포함돼 있고 기업들은 매년 공식적으로만도 3조원 안팎의 돈을 접대에 사용한다. "접대비가 없어지면 강남의 경제가 무너진다"는 자조적인 얘기가 나올 지경이다.

▼정치권 실태▼

"이건 향응이 아니라 숫제 노역(勞役)입니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매일 밤 질탕한 향응에 시달리고 있는 초선의원 A씨의 '즐거운 비명'이다.

하루 저녁에 재탕 삼탕은 기본이고 심할 경우 저녁식사자리 세곳, 술자리는 두곳을 전전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보니 '술 마시려고 국회의원 됐나' 하는 한심한 생각도 들지만 '이게 다 표요 돈'이란 생각에 거절할 용기도 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술값을 자기가 내는 일은 거의 없다. 얼마 전 강남의 한 일식집에서 당선 기념으로 고교 동창생 4명과 함께 먹은 저녁값 84만원과 인근 가라오케에서 먹은 여종업원 팁을 포함한 2차 술값 260만원을 모두 벤처기업으로 돈을 번 동창이 계산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솔직히 돈을 주겠다는 사람은 많지만 돈을 받으면 뒤탈이 생길 수도 있어 주로 술값을 대주는 스폰서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지방공무원들의 고충▼

지방도청에 근무하는 B국장은 1년에 20∼30차례 서울에 올라와 예산지원이나 숙원사업의 진척을 위한 협조를 구하기 위해 접대를 벌인다.

그는 상경 전 아예 로비 대상 공무원의 신상명세를 파악, 연고 있는 도청 직원을 찾아 점심이나 저녁을 예약토록 한다. 중앙부처 공무원을 만날 때는 반드시 지역특산품을 선물로 준비한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각 지방자치단체는 막대한 접대비 지출을 위해 각 예산 항목에 은닉예산을 만들 수밖에 없다. 일례로 부산시의 경우 접대비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으로 △부서운영 업무추진비 5억2944만원 △시책추진 업무추진비 20억원 △기관운영 업무추진비 6억7980 등 30억원이 넘는 예산을 확보해놓고 있다.

▼기업접대비 지출 실태▼

국세청이 작년 10월 국회에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기업들이 96∼98년 3년 동안 기밀비 교제비 사례금 등을 포함, 접대비로 썼다고 신고한 돈은 총 9조9898억원에 달한다.

연도별로 보면 △96년 2조9656억원 △97년 3조4988억원 △98년 3조5254억원으로 외환위기 이후에도 접대비 지출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美는 한끼 20달러內 법제화▼

선진국에서는 우리 같은 접대문화를 상상할 수 없다. 미국의 정치인이나 관리들은 20달러 이상의 선물을 받거나 식사를 접대받을 수 없도록 한 공직자윤리법을 철저히 지킨다. 미국 공직자들은 특정인으로부터 1년에 50달러 이상을 받는 것도 금지돼 있다.

정 관 재계의 유착을 비유해 '철의 삼각구조'라는 비난까지 샀던 일본은 요즘 '공무원윤리법'을 제정해 '접대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4월부터 시행된 이 법은 중앙부처 과장보 이상이 업자로부터 5000엔 이상의 선물이나 접대를 받았을 경우에는 상사에게 보고해야 한다. 또 2만엔 이상은 공개해야 하고, 자기가 돈을 내고도 업자와는 골프나 식사를 할 수 없다.

▼전문가 견해▼

효성가톨릭대 사회학과 이정옥(李貞玉)교수는 "접대문화는 남성들 사이에 만연한 '끼리문화' '눈감아주기 문화'의 온상"이라며 "공익적 요소가 사적(私的) 이익으로 전환되고 이를 공동으로 묵계하는 현장이 바로 술자리 접대문화"라고 지적했다.

여성단체연합 남인순(南仁順)사무총장은 "기업 로비자금을 근절시키지 않는 한 한국의 접대 문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영아·윤영찬기자·워싱턴=한기흥특파원>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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