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29일 중대고비]정부 "현대 핵심계열사 팔아라"

  • 입력 2000년 5월 28일 19시 50분


현대그룹이 건설 유동성 자금부족으로 야기된 현대사태해결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임에 따라 금융시장은 오늘 중대한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몽헌(鄭夢憲)현대회장과 김윤규(金潤圭)현대건설사장이 27일 일본으로 출국한 가운데 주거래은행이 현대측에 대해 시장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요구한 핵심 계열사 매각 등 자구계획발표를 계속 늦추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늘부터 다시 거래를 시작하는 주식 채권 외환 등 금융시장이 적지 않게 출렁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당초 현대측은 정부의 요구를 일부 수용, 현대건설의 유동성 자금 확보를 위해 올해말까지 약 6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하는 내용의 자금조달 계획을 마련하는 한편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과 이익치(李益治)현대증권회장 등 최고 경영진의 퇴진을 포함한 자구조치를 발표키로 했으나 28일 저녁까지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현대건설은 28일 현대자동차 지분(2.8%)을 포함해 현대전자(0.32%), 고려산업개발(2.82%) 등 상장사 지분과 비상장사인 현대석유화학 지분(11.63%) 등 보유 유가증권을 매각해 모두 4000억원의 유동성 자금을 조성키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공식적인 발표는 없는 상태다. 또 부동산 처분과 경기 수지 죽전 김포지역의 아파트 분양 등을 통해 2000억원을 확보키로 하고 이같은 자구 노력안을 마련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작년 말 기준으로 현대건설의 차입금 규모는 5조1534억원으로 올해 말까지 상환해야 할 금액은 8090억원이어서 현대측 계획이 예정대로 시행되면 자금난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는 정명예회장의 현대자동차 지분(2.1%) 추가 매집계획을 취소하고 현대차의 개인대주주로만 남을 뿐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약속할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는 현대건설 차원의 자금조달만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경영진의 대폭적인 물갈이와 계열사 및 보유자산 매각 등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을 촉구했다.

정부는 27일 저녁 재정경제부장관과 기획예산처장관, 금융감독위원장, 청와대경제수석 및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경제장관 회의를 갖고 현대그룹에 대해 강도 높은 경영개선 및 구조조정 조치를 취할 것을 공식적으로 촉구했다. 경제장관들은 일부 제2금융권 금융기관들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현대의 만기도래 회사채와 기업어음 등에 대한 자금회수를 자제토록 요구했다.

이용근(李容根)금융감독위원장은 “금융시장이 일부 현대계열사 문제를 그룹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현대그룹이 책임경영체제를 구축하지 못하고 구조개혁을 기대만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현대는 조속한 시일 내에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경림(金璟林)외환은행장은 “현대의 재무구조는 건실하며 현대건설 등 일부 계열사를 빼면 유동성 자금 상황도 안정적”이라며 “다만 시장신뢰를 되찾는 차원에서 그룹 내 일부 우량계열사를 매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대측은 정회장의 출국목적에 대해 “예전부터 추진해오던 포괄적인 외자유치 문제로 출국했으며 일본 경단련(經團連)고위관계자를 만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원재·이병기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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