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화성/"기술은 무슨…그냥 밀어 붙여"

  • 입력 2000년 5월 22일 19시 13분


참 이상하다. 왜 한국 운동선수들은 경기 도중 잘 넘어질까. 98 프랑스월드컵축구 때 결정적인 순간에 넘어지는 것은 십중팔구 한국선수들. 어디 축구만 그럴까. 한국 농구 경기도 공격과 수비가 순식간에 바뀔 때 보면 곧잘 넘어진다. 한마디로 순간 방향전환이 잘 안된다. 이런 경우는 미국프로농구(NBA) 경기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NBA 선수들은 상대 공격수를 막으면서 뒷걸음질로 가는데도 그렇다. 그뿐인가. 상대 공격수의 현란한 방향전환 드리블에도 전혀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것은 유도 한일전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분명 힘은 한국선수가 강한 데도 일본선수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몸도 부드럽다. 한국선수는 강하지만 뻣뻣하다. 그런데도 일본선수에게 끌려 다닌다. 그러다 아차 하는 순간에 넘어간다.

축구한일전을 보면 또 어떤가. 일본축구는 공을 아낀다. 힘을 아낀다. 그러다 보니 발목의 스냅을 이용해 공을 툭툭 쉽게 찬다. 한국축구는 우선 급하다. 빨리 빨리가 몸에 배었다. 서두르다보니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모두 100m 출발선에 선 단거리선수 같다. 당연히 무게 중심이 발 앞쪽에 쏠려 건드리기만 해도 넘어진다. 게다가 직선적이어서 방향이 조금만 바뀌면 “아이쿠” 하며 코가 깨진다.

한국스포츠는 어릴 때부터 오직 이기는 것만 배운다. 기본은 뒷전이다. 그래서 몸의 중심이 높고 잘 넘어진다. 초 중학교 축구경기에서 벤치의 코치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뭘까. 그것은 “한번에 처리해” “밖으로 걷어내”이다. 오직 안전하게 이기기 위해서 ‘그저 막고 차고 걷어내’라는 말이다. 이러니 개인기가 늘 틈이 없다. 정작 성인이 되면 운동이 지긋지긋해진다.

일본유도는 기본을 철저히 중시한다. 고등학교 때까진 그 흔한 ‘변칙 업어치기’도 금지된다. 자연히 무게중심이 낮다. 한국에선 초 중등 학생들도 무릎꿇고 업어치기 등 변칙기술이 화려하다.

인터넷세대인 N세대는 일과 놀이가 같다. ‘일 따로 놀이 따로’는 그들을 하품 나게 한다. 그들에게 축구장이나 농구코트는 커다란 놀이터일 뿐이다. 그들을 신나게 놀게 해줘야 한국스포츠는 한 단계 뛸 수 있다. 그래야 기본이 튼실해진다. 단기간 눈앞 승부에만 신경 쓰다간 언젠간 와르르 무너진다. 하기야 어디 한국스포츠만 그런가. 개발이익에 눈멀어 유적지를 포클레인으로 파헤친 한국사회는 또 어떤가. 얼마 전 끝난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우승한 부산고의 추신수는 어깨와 팔꿈치 통증에도 불구하고 진통제를 먹어가며 공을 던졌다.

준우승한 경기고의 이동현도 5일 동안 4경기에 연속 등판했다. 팀 전체 투구수인 606개 중 80%에 가까운 460개를 던졌다.

쯧쯧, 어디 이래서야 대스타가 나올 수 있을까.

4일 잠실야구장 지붕 위로 첫 150m짜리 장외홈런을 날린 두산의 김동주는 허벅지 둘레가 자그마치 30인치다. 든든한 두 기둥이 떡 받치고 있으니 흔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기초가 튼튼해야 스타가 될 수 있다.

모래를 쪄서 어떻게 밥을 지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허공에 사다리를 놓을 수 있겠는가. 문제는 기본이다.

김화성<체육부차장>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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