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양기대/'정치는 현실' '개혁은 꿈?'

  • 입력 2000년 5월 18일 19시 29분


정치권이 정당의 지구당에 유급사무직원을 둘 수 없다는 개정 정당법을 시행도 해보지 않고 재개정을 추진하는데 대해 비난이 거세지는 분위기다.

‘돈먹는 하마’로 일컬어지는 지구당에 유급사무원을 두지 못하게 했는데도 정치권이 반발하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 유급사무원이 아닌 자원봉사자로 지구당을 운영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이유 때문.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한 ‘주범’은 15대 국회의 졸속입법이다. 여야는 2월 정당법을 개정하면서 중선거구제 도입과 지구당 폐지를 전제로 ‘정당의 유급사무직원은 중앙당에 150명 이내, 당지부에는 5인 이내로 한다’는 조항(제30조2항)을 만들었다. 그러나 결론이 소선거구제로 났는데도 이 대목을 손대지 않은 것.

그 후 선관위가 이 규정에 대해 “지구당에 유급사무원을 둘 수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리자 정치권이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선관위의 유권해석은 현실적으로 여야가 지구당을 존속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무리가 있다. 법절차상 문제가 있다면 정당법 보완을 검토하겠다”는 게 민주당측 입장. 한나라당도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이 입장에 동조한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지구당을 자원봉사자로 운영하면 그들이 이권청탁 등의 유혹에 빠질 우려가 있다”며 “정치는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지구당마다 평균 2, 3명의 유급사무원을 두고 있어 큰 부담이 되지만 그 관행의 사슬을 끊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더라도 자신들이 스스로 만든 법, 그것도 정치권의 고질인 고비용구조의 타파에 도움이 되는 법규정이라면 일단 시행해본 뒤 문제점이 드러나면 그때가서 다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구당에 자원봉사자를 구하기 어렵다면 지구당 폐지를 재검토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정치는 현실’이라는 얘기만 되뇐다면 정치개혁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이 될 수밖에 없다.

<양기대기자> 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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