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속의 작품]은희경/옛사랑의 잔영속에 흐르는 연가

  • 입력 2000년 5월 16일 19시 12분


《문학은 문학 아닌 것에서 상상력을 수혈받습니다. 클래식 팝송 고전미술 팝아트 사진 영화 등등. 때로는 결정적인 모티브가 됩니다. 대표적 문인들이 자기 작품속 작품에 대한 감상기를 적습니다. 타 장르 작품의 어떤 이미지가 어떻게 글과 교접했는지에 대한 수줍은 고백입니다.》

이십대 초반에 존 레넌의 전기인 ‘모반의 카리스마’를 읽었다. 그 무렵 신촌역 앞의 비좁은 이층 카페 ‘블루 침니’에는 존 레논과 요코의 나신(裸身)인 ‘베드 인’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나는 스피커 바로 아래 어두운 구석자리에 앉아서 비틀스를 듣곤 했다. 나의 이십대에 그것은 존 레넌의 노래에 대한 관심이기도 했고 ‘모반’이라는 정신에 대한 관심이기도 했으며, 그 책을 내 하숙방에 놓고 갔던 남자에 대한 관심이기도 했다.

그 시절은 지나가 버렸다. 그때의 사랑은 퇴색했고 나는 젊은 시절의 사랑과 꿈에 대한 의미를 천천히 망각해가는 과정이 바로 삶이리라고 생각하며 일상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비틀스를 들었을 때, 그 노래는 내 마음속 방안에 가득 차 있던 침묵과 해묵은 먼지 사이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날아올랐다. 마치 내 청춘이 리플레이되어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 같았다. 다시 듣게 된 비틀스, 그것이 ‘러버 소울’이었다. ‘러버 소울’을 걸어놓고 캔맥주 몇 개를 마신 뒤 취해 낮잠이 들었던 때도 가끔 있었다. 그때 낮술에서 깨어나 부끄럽도록 환한 창밖을 향해서 허망히 중얼거리던 말,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거지… 나는 그런 느낌의 책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러버 소울’에 실린 노래 14곡이 ‘그것은 꿈이었을까’의 소제목이 되었다.

“존 레넌의 목소리를 들으면 (대마초를 피웠던) 들판에서의 기억이 다시 떠올라. 아주 나른하고 몽환적인 목소리로 노래하는 거야. … 하지만 (그의) 노래 제목처럼 그런 건 ‘인생의 어떤 하루’일 뿐이지. 그 날을 뺀 대부분의 인생은 시간 속에 그냥 휩쓸려가는 거야.”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서 말했듯이 ‘그것은 꿈이었을까’는 인생의 어떤 하루에 해당하는 특별하고도 불가능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일반적인 인생의 하나로서 자기 삶을 흘려보내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청춘을 위한 연가라고나 할까.

‘러버 소울’이 발표된 1966년은 존 레논이 런던의 인디카 화랑에서 오노 요코를 처음 만난 해이기도 하다. 존과 요코의 강렬한 사랑은 ‘그것은 꿈이었을까’의 마지막 부분을 끝맺도록 해준다. “그때였어. 비가 쏟아져내리듯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 오, 거기 펼쳐져 있는 두 영혼의 낯선 춤! 꿈속의 일이었을까.”

그럴까? 인생의 어떤 하루처럼 유한했던 젊은 날의 사랑… 단지 꿈이었을 뿐일까.

은희경(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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