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현대투신 부실 "네탓" 공방

  • 입력 2000년 5월 2일 19시 19분


현대투신 부실책임을 놓고 설전을 벌이는 정부와 현대그룹간 대립이 점입가경이다.

현대그룹은 과연 어떤 목적으로 부실덩어리인 국민투신을 인수했을까. 현대가 저리 자금지원을 요구하는 빌미로 작용하고 있는 한남투신 인수에 이면계약은 없었을까.

▽국민투신 인수 속셈은〓현대는 정부가 자금을 지원해야 하는 근거로 부실한 국민투신을 인수해 정부부담을 덜어줬다는 공로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96년 현대가 국투를 넘볼 때 정부 입장은 재벌이 투신업에 진출할 때 나타날 부작용을 우려해 반대 쪽에 가까웠다.

현대그룹은 이에 따라 현대증권 현대해상화재 현대시멘트 금강그룹 강원은행 등 계열사를 동원해 국투지분 50.95%를 주당 1만7500원에 인수해 지분을 15% 이상 인수할 수 없도록 한 투신업법을 위반했다. 이에 따라 법 위반 사실에 대해 비난이 쏠리자 지분을 다른 회사에 팔았다가 지분제한이 풀린 뒤 다시 되사는 수법을 사용, 경영권을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마포 가든호텔에 비밀장소를 만들어 지분 매집에 전념했던 사실은 아직도 증권가에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당시 국민투신 인수전(戰)에는 삼성그룹도 가세했다가 사업전망이 불투명하다며 포기한 바 있다.

▽한남투신 인수 이면계약 있었나〓거평그룹이 대주주였던 광주소재 한남투신은 모기업인 거평이 IMF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자 빈 껍데기 회사로 남아 투자자보호가 큰 문제로 등장했다. 금감위는 당시 대한투신이 한남을 인수하도록 노력했으나 대투 경영진의 반대로 무산되자 결국 현대로 넘겼다.

현대투신 실무진은 반대했지만 정치권에서 대주주인 정몽헌회장을 불러 현대투신 인수를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 자리에 참석한 이익치 현대그룹 회장은 “정부가 파격적인 저리자금을 주기로 약속했다”고 그룹임원들에게 털어놨고 그룹 내에서는 정부가 모종의 약속을 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현대투신 고위 관계자는 “당시 일을 문제삼고 싶지 않다”면서도 “정부가 한남 인수에 따른 공을 인정한다면 현대투신 자금지원에 인색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감위 고위 관계자는 “한남투신 인수와 관련, 정부는 저리자금 지원을 할만큼 했다”면서 “방만한 경영을 해놓고 이제 와서 손 벌리는 자세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지원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당사자들만 알 수 있는 일.

이같은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정부의 사후감독과 감시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는 추측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실제로 정부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바이코리아펀드 편법운용을 들고나오고 나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을 정도.

증권연구원 고광수 박사는 “현대에 한남투신을 넘긴 것 자체가 부실을 키운 꼴”이라고 분석했다.

▽투자자를 볼모로 잡은 바이코리아펀드〓현대그룹의 부실계열사 지원에 큰 역할을 한 바이코리아 펀드는 투자자를 볼모로 자본시장을 압박하는 도구로 사용됐다는 지적이다.

박현주 미래에셋 사장은 “투신업에는 견제와 균형이 있어야 하는데 그룹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재벌계열 투신사 때문에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형펀드로 키워놓은 바이코리아펀드는 그 자체가 자본시장의 안정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를 압박하는 카드로 충분히 사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바이코리아펀드는 한국경제보다는 현대경제를 위한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

증권전문가들은 “현대투신은 개인고객들을 유상증자에 참여시키면서 회사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개인주주들을 모아 이미 많은 후유증을 예고했다”고 설명했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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