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렌즈 속 5월'

  • 입력 2000년 4월 30일 20시 35분


“참혹했던 과거를 적절히 수습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그 과거를 기억해야만 한다. 용서가 필요하면 용서해야 하지만 잊어서는 안된다. 기억함으로써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말이다. 그는 누구인가. 백인정권에 맞서 투쟁하다 27년의 옥고를 치르고도 용서와 화해의 리더십으로 남아공 흑백통합을 이뤄낸 인물이다. 그러하기에 그가 말하는 ‘용서와 기억’은 천금의 무게를 지닌다.

▷아름다운 5월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픔의 달’이기도 하다. 80년 5월 광주. 20년 세월이 흘렀다. 이제 그 날들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기록됐고 망월동 묘역에는 웅장한 추모탑이 들어섰다. 그러나 ‘5월 광주’를 그린 ‘봄날’의 작가 임철우는 이렇게 묻는다. “과연 그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된 것인가. 진정 지금은 그 비극적인 사건이 영원히 역사의 장으로 철해져도 무방할 때인가. 최소한 ‘미안했다’는 한마디 대신 ‘화해’니 ‘용서’니 하는 말들을 이렇듯 쉽사리 강요해도 좋을 만큼 이 시대는, 그리고 우리들은 정말 떳떳한가.”

▷80년 5월 특수부대원으로 광주에 투입됐던 한 사진작가가 ‘5월 광주의 아픔을 사진에 담아 속죄’하는 사진전(4월20일부터 5월20일까지·광주 남봉미술관)을 열고 있다고 한다. 대구예술대 겸임교수인 이상일씨(44)는 “지난 20년간 망월동을 화해와 용서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배회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그는 상처의 아픔과 속죄의 정(情)을 렌즈에 담았다.

▷고통은 기억하는 사람의 몫이라고도 하지만 모두가 기억할 때 그 고통은 용서와 화해로 치유될 수 있다. ‘한(恨)과 외면’으로는 안된다. 그날을 기억하고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상처는 들쑤셔서도 안되겠지만 눈돌린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렌즈에 담지는 못할지언정 마음에라도 담아야 한다. ‘5·18 스무돌’은 그렇게 맞아야 한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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