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네 차례나 달라이 라마의 입국비자 발급을 거부해왔던 우리 정부로서는 사실상 그의 입국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이에 대한 중국측의 공식 반응은 종래와 변함이 없어 보인다. ‘달라이 라마 문제는 종교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정부가 이전의 입국불허 방침을 계속 지켜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달라이 라마 방한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보는 중국 정부의 관점을 한국 정부에도 그대로 적용하기를 고집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한다. 중국 정부로서는 소수민족인 티베트의 자치를 요구하는 달라이 라마가 ‘정치적 공적(公敵)’일지 모르나 그의 입국을 희망하는 한국 불교계로서는 단지 ‘종교지도자’의 설법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정부로서도 이같은 ‘종교적 이벤트’를 계속 막을 명분이 없다는 것을 중국 정부는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 정부는 기왕에 달라이 라마의 입국을 허용하는 입장을 밝혔다면 당당하게 중국 정부를 설득하고 그의 한국방문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본다. 달라이 라마에게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입국비자를 발급한다면 그것으로 한중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되리라고는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것은 ‘자주외교’의 기본이다.
미국은 물론 프랑스 일본 태국 등 여러 나라가 그동안 달라이 라마의 자국방문을 허용해왔다. ‘하나의 중국 지지’라는 정치 외교적 입장과 종교지도자의 사적(私的)방문을 엄격하게 분리한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그들 나라와 우리 정부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정부의 협조가 필요한 시점에서 그들의 신경을 거스를 수도 있는 문제에 신중히 대처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계속 ‘중국 눈치 살피기’란 비난을 듣는다면 근본적인 한중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점은 중국정부도 헤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