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憲裁 과외금지 違憲결정]'고액 족집게'일반화 우려

  • 입력 2000년 4월 27일 19시 33분


27일 헌법재판소의 과외금지에 대한 위헌결정에 따라 고액 과외가 기승을 부리고 ‘사교육 시장’이 전면적으로 재편되는 등 큰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또 고액 과외에 따른 계층간 위화감이 조성되고 무분별한 과외가 학교 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질 수 있어 헌재 결정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논란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학원의 설립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을 빠른 시일내에 개정하는 것을 포함한 적절한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사교육비 부담에 허덕이는 학부모들은 과외비가 오를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추세를 볼 때 헌재의 이번 결정은 사교육비를 대폭 상승시키는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한국교육개발원 김흥주(金興柱)학교교육연구본부장은 “사교육비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서도 줄지 않았고 현재도 계속 늘고 있다”면서 “과외 전면허용이라는 분위기에 편승해 사교육비는 큰 폭으로 뛰어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유명한 학원강사나 고학력자들이 대거 과외시장에 뛰어들면서 과목당 수백만원대의 고액 과외나 이른바 ‘족집게 과외’가 일반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 과외를 알선하면서 고액의 수수료를 받는 ‘알선업자’가 등장할 가능성이 짙다.

그러나 일반인도 과외를 할 수 있어 과외 교사의 공급이 늘어나 사회 일각에서는 싼 가격에 과외를 할 수 있는 ‘틈새 시장’도 늘어나 과외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전망이다. 벌써부터 퇴직한 교원들이 과외 교사로 변신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사교육비 실태 ▼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한해동안 전국에서 6조7710억원이 과외비로 사용된 것으로 추산됐다. 학생 1인당 연간 평균 85만5000원, 가구당 192만5000원을 과외비로 지출한 셈이다.

그러나 이는 순수한 과외비만을 조사한 것으로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학습지 시장 등을 포함할 경우 실제 사교육비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교육개발원(98년)과 소비자보호원(97년)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사교육비 규모가 11조9000여억원으로 전체 교육예산의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교육부 대책 ▼

교육부는 헌재가 과외를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것에 위헌 결정을 내렸을 뿐 과외를 정책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인정했다는 해석을 내리고 있다.

이에 따라 학원의 설립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을 빠른 시일내에 개정해 고액과외나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과외에 대해서는 제한할 방침이다.

또 이 법의 학원 설립 요건이나 범위 등을 고쳐 싸고 질좋은 과외의 공급을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금도 행정력 부족으로 고액 과외 등을 단속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법으로 과외를 규제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 이종성(李鍾聲)교수는 “과외가 공교육의 붕괴를 가속화하면서 정부의 공교육 강화정책을 촉진하는 양면을 지니고 있다”고 헌재의 결정을 평가했다.

<하준우·홍성철기자>hawoo@donga.com

▼시민 반응▼

‘왜곡된 교육현실을 외면한 난센스.’ ‘국민의 배울 권리를 존중한 판결.’

헌법재판소의 과외금지 조항에 대한 위헌결정이 일파만파의 파장을 낳고 있다.

헌재의 이번 결정에 대해 다수의 학부모와 교사들은 “엄청난 사교육비의 부담과 공교육의 부실화를 초래해 결국 ‘과외 망국병’을 재연할 것”이라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고1 아들을 둔 주부 김옥미씨(44·서울 노원구 상계동)는 “학원비 대기도 빠듯한데 앞으로 불어닥칠 ‘과외 광풍(狂風)’을 생각하면 정말 걱정스럽다”며 “과거의 파행상 등을 감안하지 않은 이번 결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중3 딸을 둔 박명숙씨(40·서울 영등포구 신길동)는 “지금의 교육비만으로도 허리가 휘는 학부모 대부분의 정서를 무시한 어처구니없는 판결”이라며 “고액과외로 인한 계층간의 위화감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토로했다.

다수의 일선 교사도 열악한 공교육 현실이 더욱 왜곡될 것으로 우려했다.

서울 S고의 한 교사는 “빈사상태의 공교육에 대한 투자는 외면한 채 과외를 전면허용한 것은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라며 “앞으로 학생들이 교사를 무시하는 풍조가 더욱 만연할 것”이라고 한숨지었다.

이날 전교조, 한교조, 한국교총 등 교원단체들은 모두 성명을 내고 과외 전면허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전교조측은 “공교육 부실의 가속화, 사교육비 부담의 가중 등 막대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정부는 교육재정 확보를 통한 교육환경의 획기적 개선 등 조속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일부 학생과 시민들은 “법으로 교육욕구를 막아 온 기존의 ‘과외족쇄’가 잘못된 것이고 과외 전면허용은 시대적 대세”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모군(18·서울 여의도고3)은 “이미 한 학급의 절반 가까운 학생들이 학원수강 등 과외를 받는 현실에서 전면 허용조치는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말했다.

중2 딸을 둔 박명자씨(40·서울 강남구 대치동)도 “이번 결정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존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대 음악교육과 이소진교수(31)는 “음악 미술 등 예능교육은 수준높은 조기교육이 성패를 좌우한다”며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만 강구하면 바람직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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