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담론]'지구호' 구출나선 디카프리오

  • 입력 2000년 4월 24일 19시 04분


최근 개봉됐던 영화 ‘비치’의 그 아름다운 모래사장은 삼림을 파괴하고 모래사장을 불도저로 밀어버리며 만들어 낸 것이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명예회복에 나섰다. 22일로 30주년을 맞은 ‘지구의 날’을 기념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인터뷰하고 워싱턴시의 ‘지구의 날 2000’ 행사위원장도 맡았다.

디카프리오 위원장은 ‘타임’지의 ‘지구의 날 2000’ 특집호에 기고문까지 보내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며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구의 날 2000’이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연비가 높은 차를 타고 이산화탄소 배출양도 줄이잔다.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아직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은. 불도저로 산천을 뭉개버렸어도 좋다, 이제라도 진정 반성을 한다면.

사실 자연을 객관 대상으로 보는 근대적 자연관이 형성됐던 것도 400∼500년밖에 안 됐다. 자의식을 갖게 되면서 자신을 자연과 분리해서 인식하기 시작했던 인간은 16∼17세기 과학혁명으로 강력한 능력을 가지면서 자신의 보금자리인 자연을 도구로 이용하고 나아가 지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러나 게이로드 넬슨 전 미국 상원의원이 30년 전에 ‘지구의 날’을 제정하자고 했던 것은 인류가 그토록 믿고 의지했던 과학기술이 삶의 터전인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지경에 이른 것은 근본적으로 물질덩어리일 뿐인 지구와 달리 인간만이 고고한 도덕성과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예로부터 우리가 존경해 온 성현들의 지혜는 바로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석가모니의 깨달음은 우주자연과 내가 둘이 아님을, 그래서 온 천지만물 어느 하나도 ‘나’ 아님이 없음을 체득하는 것이었다.

송나라의 장재나 조선의 서경덕 같은 기철학자들이 깨달은 것도 천지만물이 ‘기(氣)’라는 동일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즉 만물은 다 같은 형제라는 것이었다. ‘주역’이나 공자 그리고 주희, 이황, 이이가 가르쳐 준 것은 자연 속에 인간이 따라야 할 도리가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가치관과 사회규범의 근거를 자연에서 찾는 사고방식은 기존 사회질서를 신비주의적으로 합리화해 사회구조의 문제를 은폐시키는 폐해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자연에 대한 지식의 축적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자연으로부터 새로운 가치관과 규범을 읽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던 조선후기 실학자 최한기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런 폐해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었다.

이기적인 인간들은 경쟁과 투쟁 속에 승자만이 살아남는다고 주장하며 마구 지구를 유린했지만 자연은 인내하며 절제와 균형이라는 공존의 지혜를 가르쳤다. 자연을 본받아 살라는 도가의 가르침은 물론 유가의 인본주의 문화도 자연 및 타자와의 조화로운 상호관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가 관심을 끄는 것도 그것이 자연과 인간의 유대를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지구의 불행은 자연의 산물인 인간이 자연을 물질덩어리로 보면서부터 시작됐다.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어머니인 지구가 사망하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은. 지구 온난화 방지기술의 개발보다 중요한 것은 어머니인 지구의 사랑과 지혜를 배우는 일이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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