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리포트]배종태/벤처정신의 국제화

  • 입력 2000년 4월 23일 20시 00분


실리콘밸리에는 유난히 아시아인들이 많다. 이들 가운데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은 역시 대만과 인도 출신. 지금까지 실리콘밸리는 IC(집적회로·Integrated Circuit) 기술에 힘입어 발전했지만 앞으로는 새로운 IC(인도인과 중국인 Indian and Chinese·)에 의해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드웨어 분야에선 중국인, 소프트웨어 분야에선 인도인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실리콘밸리 외국기업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분교의 애널리 색소니언 교수에 따르면 현재 중국계 최고경영자(CEO)가 운영하는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은 약 2000개 정도로 전체의 17%. 뒤를 이어 800여개의 인도계 벤처기업과 120여개의 이스라엘 벤처기업이 있다.

실리콘밸리 중국인 네트워크의 중심은 80년대초 미국에 유학온 이민 2세대 대만계. 당시 대만 정부는 정책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대거 미국에 보냈고 이들은 졸업후 남아서 각 기업의 기술 부문 요직을 차지하면서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회원수가 1000여명에 이르는 중국엔지니어협회(CIE)가 대표적인 대만계 모임이다.

최근에는 매년 5000여명의 대만계 미국인이 대만으로 돌아가 실리콘밸리와 대만을 연결하는 새로운 협력 메커니즘을 만들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상품 기획과 마케팅을, 대만은 제품 설계와 생산을 담당하고 자본과 기술은 함께 내놓는다. 대만 모델은 이처럼 양측의 역할 분담과 협력체계 위에 대만계 미국인들이 교량 역할을 하는 국제창업자(transnational entrepreneur)가 되어 움직이면서 작동하고 있다.

인도인들의 진출은 영어가 공용어인데다 인도 정부가 일찍부터 추진한 소프트웨어 전문가 육성 정책에 힘입었다. 인도 남부 5개주는 인건비가 싸고 우수한 프로그래머가 많이 있어 미국기업의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 하청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인텔 등 초우량기업의 팀장 중에도 인도인이 많다. 91년에 설립된 인도 출신 전문가 모임인 SIPA는 인도계 네트워크의 가장 대표적인 조직. 그러나 인도와 실리콘밸리는 아직 쌍방의 동반자적 관계까지는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 증시에 가장 성공적으로 진출한 나라. 현재 100여개의 이스라엘 기업이 미국 증시에 상장됐는데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작년에도 12개 이스라엘 기업이 상장돼 19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스라엘 기업의 실리콘밸리 진출 전략은 원천 기술과 제품 개발은 본국에서 하고 실리콘밸리에 미국 회사를 설립한 후 미국에서 제품 사양 결정과 마케팅, 자본 조달을 하는 방식이다.

한국계 벤처 기업중에는 지난해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한 실리콘이미지와 회원수 500만명의 인터넷업체인 다이얼패드닷컴이 있다. 그러나 한국계 벤처기업의 숫자는 아직 매우 적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기업은 어떤 전략으로 실리콘밸리에 진출해야 하는가. 이스라엘 모델이 가장 이상적일 것같다. 실리콘밸리에 한국인들이 더 많이 나가서 배우고 뿌리를 내려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들고 더 많은 국제 창업자가 나오게 해야한다. 이를 위해 유학생과 연수생을 실리콘밸리 등 지역에 많이 보내고 기업에서도 우수한 인력을 현지에 보내서 ‘국제통’을 만드는 노력을 벌여야 한다.

배종태(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교수·현 스탠퍼드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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