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 "稅金 무서워 M&A못하겠어요"

  • 입력 2000년 4월 12일 19시 23분


한국의 기업 풍토에서 인수합병(M&A)은 요원한 꿈인가.

벤처기업간 최대의 M&A로 관심을 끌었던 새롬기술과 네이버의 M&A 합의가 11일 밤 최종 결렬됐다. 새롬기술의 주가가 최근 ‘반토막’이 되면서 1대 4의 비율로 합병하려던 당초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했기 때문.

결렬의 배경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크게 작용했지만 제도적인 원인도 적지 않다. △소액주주들이 M&A에 반대해 주식매수를 청구할 경우 이를 감당하기 어렵고 △기업결합에 따른 엄청난 세금을 물어야 하며 △공정거래법 증권거래법 등의 복잡한 규제가 M&A를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이다.

▽청산 소득세만 1조원〓지난해말 주식 맞교환 방식으로 신세기통신을 M&A한 SK텔레콤이 고민에 빠졌다. 증권거래법상 상장법인인 SK텔레콤이 비상장법인인 신세기통신을 인수하려면 양사의 기업가치를 따져 차액 이득을 많이 본 측에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

상장기업인 SK텔레콤은 거래소 주가 변동의 평균치로 기업가치를 결정할 수 있지만 비상장기업인 신세기통신은 마땅히 기업가치를 결정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자산가치와 기업평가기관이 내놓은 수익가치를 평균한 가액으로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국내에 제대로 기업을 평가할 수 있는 기관이 없는데다 영업 등 비자산가치에 대한 정확한 평가도 어려워 신세기통신의 주당 가치는 5000원으로 산정됐다. 따라서 주당 3만5000원 안팎에 인수한 SK텔레콤은 차액에 대한 청산 소득세로만 약 1조원을 내야 한다.

특히 신세기통신을 합병할 경우 SK텔레콤은 신세기통신이 정부로부터 인가받은 주파수 등을 다시 인가받아야 하는 등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이때문에 SK텔레콤은 ‘화학적 합병’을 포기하고 2개 회사 체제로 운영할 계획.

미국이나 독일 등은 주식 맞교환 방식으로 M&A가 이뤄졌을 경우 주식 양도차액에 대해 곧바로 세금을 물리지 않고 받은 주식을 처분할 때 세금을 물리는 ‘과세 이연’ 등의 방법을 비롯해 다양한 절세 방법을 제도화해놓고 있다.

▽지주회사에 대한 까다로운 제약〓외국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인 지주회사를 통한 M&A도 한국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합병을 원하는 양측이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이 회사를 통해 양사를 경영하는 방식의 합병은 외환위기 이후 법적으로는 허용이 된 상태.

그러나 △자회사에 대한 지분 50% 이상(상장기업은 20%) △부채비율 100% 이내 △지주회사와 자회사간의 지급보증 금지 등 조건이 까다로워 현실적으로 이용되지 못하고 있다.

또 M&A가 이뤄졌을 때 상장기업은 증권거래법과 공정거래법의 까다로운 조건에 맞춰 인허가 신고를 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외국인투자촉진법 외국환관리법 등의 적용도 받아야 한다.

▽기업 경영의 불투명성과 고용 문제〓법무법인 율촌의 윤세리 변호사는 “상당수 한국기업의 경영이나 회계 방식이 불투명한 것도 기업 결합의 장애 요인”이라며 “외국인들은 한국기업의 ‘숨어 있는 채무’에 대해 두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이밖에 M&A 이후 임원급 간부나 하위 직원들간의 고용을 둘러싼 심한 불협화음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세종법무법인 김성근 변호사는 “기업 결합을 통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세제(稅制)나 각종 규제 등에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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