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遊說(유세)

  • 입력 2000년 4월 9일 20시 21분


중국의 春秋戰國(춘추전국)시대라면 언뜻 ‘混亂’이 연상된다. 천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자 諸侯(제후)가 할거하면서 천하를 넘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결과 중원은 온통 전쟁의 도가니로 변하고 말았다. 죽어나는 것은 죄 없는 백성들뿐이었다.

하지만 이 渦中(와중)에도 득을 본 자가 있었다. 엄청난 무기수요가 일어 무기상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우리도 잘 아는 고사 矛盾(모순)의 배경도 이 때가 아니던가. 또 葬儀社(장의사)도 톡톡히 재미를 봤다. 원래 ‘죽어야 사는’ 그 직업적 속성 때문에 관이 불티나게 팔려 산림이 황폐해질 정도였다.

또 하나, 諸侯들의 야욕에 영합하여 수많은 ‘나 잘난 박사’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다들 한 마디씩 외쳤다. “나를 쓰면 천하를 얻는다.”

이른바 百家爭鳴(백가쟁명)이다. 그들은 세 치 혀만 가지고 諸侯들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혹 맘에 맞는 諸侯라도 만나면 일약 將相(장상)에 오를 수 있었다. 說客(세객)들이다. 魏(위)의 范s(범수)는 초주검이 되도록 두들겨 맞고 오줌 멍석을 뒤집어쓰는 굴욕을 참은 끝에 秦(진)의 재상에 올라 靑雲의 꿈을 펼쳤으며 찢어지게 가난했던 李斯(이사)는 秦始皇(진시황)을 만나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다. 세 치 혀의 위력은 이렇게 컸다.

이처럼 說客이 諸侯를 만나 자신의 치국방책을 說得(세득)시키는 것을 두고 司馬遷(사마천)은 史記(사기)에서 遊說라고 했다. 공자는 최초의 說客이었다. 그 遊說가 지금도 한창이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mail.hanyang.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