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80돌 특집/벤처21]벤처조직 무엇이 다른가

  • 입력 2000년 3월 31일 21시 31분


벤처기업 ‘버추얼텍’의 서지현 사장이 무언가 공개해서는 안될 말을 하려 하자 김윤 홍보팀장이 ‘언니’라고 부르며 말을 가로막았다.

급하게 말을 막느라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자신도 모르게 ‘언니’로 바뀌었다.

직원수가 100명도 안되는 벤처기업이고 사장이 35세의 젊은 여성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보유주식의 시가총액이 3000억원을 넘고 미국에 지사까지 두고 있는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를 팀장이 언니라고 부르는 것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임효철 재무팀장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재무분야에서 대리로 근무하다 버추얼텍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그는 “급한 결정이 필요하면 바로 몇 걸음 앞의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시간도 안돼 중요한 결정이 내려진다. 지난번 직장에서는 과장 차장 부장 임원들이 차례로 결제해야 하므로 아무리 빨라도 반나절 이상 걸렸다”고 말했다.

자신이 뭔가 잘못 판단해도 결제 과정에서 윗분들이 바로잡아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할 수 없는 것도 다른 점이다.

공대출신의 서사장은 “연구분야 외의 일은 잘 모르기 때문에 담당직원의 의견을 최대한 따른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주단위로 인사평가를 받는다. 연초에는 일을 적게 하고 연말에 일을 많이 할 경우 연말에 일을 많이 한 사람이 과대평가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구성원끼리 ‘형’ 또는 ‘언니’라고 부르는 친소관계가 인사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실적에 사활이 달려있는 벤처기업에서 그런 일은 오히려 더 힘들다고 한다.

서사장은 “특별히 친하게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감정은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러 다니거나 하면 충분하지 연봉을 올려준다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사장으로부터 직접 E메일로 연봉을 통지받는다. 김팀장은 “비밀 유지란 점에서 E메일은 좋은 수단이다. 팀장보다 팀원의 월급이 많은 경우도 적지 않다. 서로의 연봉을 묻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라고 말했다.

출퇴근시간의 개념도 사실상 없다. 퇴근시간에 상사 눈치보며 앉아있는 직원도 없지만 퇴근시간이라고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를 뜨는 직원도 없다. 임애라 디자인팀장은 “다른 사람과 시간을 맞춰 해야 할 일이 없다면 새벽까지 일하고 아침 늦게 출근하거나, 저녁 일찍 퇴근하고 새벽에 출근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회식은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 함께 먹고 즐기는 것이 주목적이고 술을 마셔도 술잔을 주고받는 일은 별로 없다. 임팀장은 “술잔이 비면 첨잔해주고 거부하면 강요하지 않는다. 즐거울 때까지 마시고 피곤하면 일찍 자리를 떠도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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