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걸 온 더 브릿지/칼이 맺어준 운명적 사랑

  • 입력 2000년 3월 30일 19시 44분


칼과 사랑. 어울리는 만남일까? ‘걸 온 더 브릿지(The Girl On The Bridge)’는 칼 던지기 쇼를 하는 남자와 진정한 사랑에 목말라 하는 한 여성의 환상적인 사랑을 그린 멜로 영화다.

뭔가를 베거나 찔러야 한다는 칼의 ‘숙명’을 감안하면 복수나 붉은 피 등의 섬뜩한 단어들이 어울릴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리디큘’을 연출한 프랑스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은 그 칼을 ‘사랑의 매개체’로 만들었다.

지루하기로 소문난 프랑스 영화를 떠올리면 오산이다. 스토리는 다소 비현실적이지만 CF 화면을 보는 듯한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이 돋보이는 영화다.

이 작품의 도입부에서 아델(바네사 파라디 분)은 “남자들은 사랑한다며 내 몸을 찾은 뒤 모두 떠나버렸다”면서 “나는 아무도 머물러 주지 않는 ‘기차역의 대합실’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장면이 바뀐 뒤 자살을 결심한 아델은 다리 위에서 어둠으로 채색된 센 강을 내려다보다 중년 남자 가보(다니엘 오테이유)를 만난다.

가보는 아델을 설득해 서커스와 각종 연회에 함께 출연하게 되며, 가보는 아델의 몸을 표적으로 칼 던지기 쇼를 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이 칼 던지지기 쇼. 가보의 이마에 흐르는 땀, 아델의 몸 주변에 ‘슉’하는 소리와 함께 꽂히는 칼. 그럴 때마다 아델은 두려움과 긴장에 휩싸인 채 ‘에로틱한 전율’을 느낀다. 쇼 장면은 단지 볼거리가 아니다. 칼과 표적으로 하나가 없어서는 존재할 수 없는 둘의 운명적인 사랑을 암시한다. 실제 극 중에서도 아델이 미적지근한 가보의 태도를 오해해 다른 남자와 함께 떠나버리자 공연은 불가능해지고, 두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잃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르콩트의 뛰어난 선택은 환상적인 스토리에 걸맞게 절제된 대사 가운데 빠르게 전개되는 흑백 화면, ‘Who Will Take My Dreams Away?’ ‘I’m Sorry’ 등의 감성적인 음악. 만약 컬러였다면 어울리지 않는 여성의 짙은 화장처럼 ‘촌티’나는 영화가 될 뻔 했다.

이 작품으로 프랑스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세자르 상에서 두 번째 남우주연상을 받은 오테이유와 순수와 관능이 겹쳐지는 파라디의 연기도 매력적이다. 올해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에 오르기도 했다. 18세 이상 관람가. 4월8일 개봉.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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