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진단]'삼풍'부지 활용 市-주민 줄다리기

  • 입력 2000년 3월 28일 19시 40분


95년 대형 붕괴참사로 50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풍백화점 부지.

5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이 부지의 용도를 둘러싸고 서울시와 부지매입 업체, 주민들간에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로부터 이 부지를 사들인 ㈜대상이 이곳에 37층과 24층 각 2개동씩 모두 4개동의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을 짓기로 하자 인근 주민들이 결사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서초동 1685의3 삼풍백화점 부지는 원래 삼풍아파트 단지 내에 포함된 땅. 아파트 단지 내 생활편의시설의 하나로 백화점이 들어섰었다.

6870여평에 달하는 이 땅은 삼풍백화점 붕괴참사가 있은 뒤 서울시가 4800여억원에 달하는 유족보상비를 마련하기 위해 삼풍측으로부터 무상으로 넘겨받았다.

시는 이 땅의 원래 용도인 주거용지로 매각해서는 보상비를 충당할 수 없다고 보고 96년 4월 상업용지로 용도변경해 공개입찰에 부쳤다. 결국 4차례 유찰된 끝에 96년 11월 ㈜대상(당시 미원건설)에 평당 3000여만원씩 2052억여원에 매각됐다.

대상측은 원래 이 땅에 42층 규모의 백화점 등을 지으려 했으나 국제통화기금(IMF)사태 등으로 유보했다가 최근 삼성중공업을 시공사로 24층과 37층 각 2개동씩 모두 4개동의 ‘삼성그랑쉐르빌’을 짓기로 확정, 지난달 서울시로부터 건축계획을 승인받았다.

삼풍아파트 주민들은 이 곳에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 일조권과 조망권을 침해받고 교대역사거리와 고속버스터미널을 잇는 우면로의 교통정체도 극심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삼풍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송용섭(宋龍燮·63)회장은 “부상자를 포함해 15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 부지에 초고층 아파트를 짓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기념관과 추모공원을 조성해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거나 삼풍백화점 사고로 그동안 유형 무형의 피해를 감수해야 했던 인근 주민들을 위해 저층의 백화점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회장은 또 “96년 4월 용도변경 당시 서울시가 건물을 신축하더라도 층수를 제한하는 것은 물론 층수 등을 규제할 수 있는 상세지구로 지정해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후 주민들과 별다른 상의 없이 초고층 아파트 건축 허가를 내준 것은 주민들을 기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지난달부터 지금까지 3차례 건축반대 궐기대회를 연 데 이어 다음달 4일에도 궐기대회를 열 예정이다. 주민대표 10명은 15일 서울행정법원에 건축허가처분 취소소송을 내기도 했다.

삼풍아파트뿐만 아니라 인근 삼호가든아파트 700여가구 주민들도 건축 반대서명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는 허가 과정에 아무런 법적 하자도 없으며 주민들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막대한 보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상업용지로 용도변경한 부지에 대상측이 법규에 맞게 건축허가를 신청한 것을 근거 없이 막을 수 없었다”며 “용도변경 당시 상세지구 지정 등의 얘기가 있었지만 시의회에서 아무런 단서조항 없이 상업용지로 용도변경하는 안을 통과시킨 이상 층수 등을 규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시는 또 지난달 고건(高建)시장 주재로 주민 대표와 대상 관계자, 시공무원들이 모여 충분히 협의한 뒤 신축을 허가했기 때문에 주민 의견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상 관계자도 “신축될 주상복합건물은 삼풍아파트 서쪽에 위치하게 되므로 일조권과 조망권을 침해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정보·남경현기자> suhchoi@donga.com

▼사업자 입장▼

왜 굳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참사 현장에 초고층 아파트를 지으려는 것일까.

사업자인 대상측은 24층과 37층 각각 2개동씩 신축할 주상복합건물의 지하 1층과 지상 1층은 쇼핑 스포츠 문화시설로, 나머지 층은 58∼107평형 대형아파트 748가구가 입주토록 할 계획이다. 분양가는 평당 1400만원선이며 올 상반기 중 분양에 들어가 2002년 8월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참사현장이라는 기분상의 문제는 있지만 워낙 땅값이 비싸 30층 이상의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주상복합 아파트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게 대상측의 입장이다.

또 시공사인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지난달 고급아파트 수요층을 대상으로 예비조사를 한 결과 의외로 입주의사가 있다는 응답이 많았다”며 “기분상 께름칙해 할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강남의 요지여서 성공적으로 분양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측은 신축 부지 중 사고 지점은 가급적 빈 공간으로 남기고 건물은 나머지 터에 지을 방침이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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