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벌 이대로는 안된다

  • 입력 2000년 3월 27일 20시 12분


현대그룹의 경영권분쟁이 일단락됐다. 현대그룹을 위해서나 한국기업의 대외신인도를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현대그룹 후계구도를 둘러싼 2세들간의 갈등과 암투 그리고 그 봉합과정에서 한국의 대표적 기업 현대의 ‘황제경영’ ‘가족경영’행태가 대내외적으로 부각된 것은 유감이다. 현대의 이미지 실추는 곧 한국경제의 신인도 추락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은 경영권분쟁과 관련, “국민과 소액주주들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히고 “이번 사태를 잘 수습한 뒤 현대를 경쟁력 있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현대사태는 지난 2년간 정부가 추진해 온 재벌개혁이 ‘무늬만의 개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재벌개혁의 핵심인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등은 그저 구호뿐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재벌의 방만한 차입경영과 족벌경영의 비효율성도 한국경제가 외환위기를 맞게 된 주요한 요인 중의 하나였음을 감안한다면 아직도 전근대적 경영방식을 답습하고 있는 재벌을 언제까지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

현대그룹은 33개 계열사에 종업원 18만명, 지난해 총매출액이 92조원에 이르는 한국의 대표적 재벌이다. 이같은 기업이 아직도 현대적 경영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채 총수 중심의 가족경영에 의존해 왔다. 총수와 그 가족의 지분을 모두 합쳐도 5.5%수준에 지나지 않는데도 계열사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을 100% 지배하면서 경영과 인사에서 전권을 행사했다. 이같은 전횡은 수많은 소액주주와 종업원의 이익과 어긋난 경우도 많다. 이는 비단 현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의 재벌이 경제개발시대 고도성장전략이 낳은 하나의 선택이었고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견인차였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이제는 그 유효성보다 폐해가 더욱 두드러진다. 그 단적인 예가 대우그룹이다.

이번 현대 사태는 재벌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재벌들은 98년 1월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경영의 투명성 제고, 상호지급보증 해소, 재무구조의 획기적 개선, 업종 전문화 등의 기업구조조정 5대 과제에 합의했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으며 재벌개혁의 핵심과제인 기업지배구조는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

재벌개혁은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요체는 속도와 강도다. 재벌개혁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이를 강제할 보다 강력한 규준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대주주의 전횡을 막을 견제장치의 법제화는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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