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割 據(할거)

  • 입력 2000년 3월 14일 19시 10분


割 據(할거)

割-벨 할 據-의지할 거 紂-말고삐 주

盲-장님 맹 貧-가난할 빈 封-봉할 봉

割據의 폐단을 가장 뼈저리게 경험했던 민족이 중국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割據’라는 말을 신경질적으로 싫어한다.

기원전 1111년, 周(주)의 武王은 殷(은)의 폭군 紂王(주왕)을 죽이고 새 나라를 세웠다. 우리도 익히 아는 伯夷(백이)와 叔齊(숙제)의 이야기는 이 때 나왔다.

하지만 武王에게는 難關(난관)이 놓여져 있었다. 땅이 너무 넓어 혼자서는 도저히 다스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국을 피자 자르듯 조각을 내어 아들과 공신들에게 나누어주니 유명한 중국식 封建政治(봉건정치)의 시작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盲點(맹점)이 있었다. 철저한 지방자치제로 천자와 제후간에는 형식적인 위계질서만 있을 뿐이었다. 그 뒤 세월이 흘러 천자의 권위가 서지 않게 되자 일부 말을 듣지 않는 제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제후들간에도 富益富(부익부) 貧益貧(빈익빈) 현상이 나타나 비옥한 평지를 받은 제후는 날로 강성해졌던 반면 그렇지 않은 제후는 열세를 면치 못했던 것이다.

제후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封土(봉토)를 근거지로 삼아 배타적, 독립적으로 세력을 펼쳤다. 결국 서로 치고 싸우기를 무려 500여년, 중원은 불바다가 되고 말았다. 죽어나는 것은 힘없는 백성들 뿐이었다. 春秋戰國時代(춘추전국시대)다.

이후 중국 사람들은 좋은 교훈을 얻었다. 割據는 결과적으로 커다란 재앙 만을 초래한다는 점이었다. 이후 중국은 아무도 割據를 원치 않았으며 다같이 하나로 뭉치는 ‘大同’(대동)만이 중시되었다.

한국식 割據主義가 판을 치고 있다. 소위 정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割據政治’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鄭錫元(한양대 교수·중국문화)

478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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