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정위기' 덮지 말라

  • 입력 2000년 3월 13일 19시 25분


금리와 환율이 오르내리면 기업 정부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도 자신에게 돌아올 플러스 또는 마이너스 효과를 민감하게 셈하곤 한다. 그런데 납세자의 부담 위에서 운용되는 재정에 대해선 둔감한 경향이 있다. IMF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재정위기를 별로 겪지 않은데다 현정부와 여당이 재정적자 조기해소를 호언하고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안이한 상황인식이 나라살림의 심각한 위기를 부를 가능성에 눈을 떠야 할 때다. 13일 한나라당은 국가채무가 작년 말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80% 안팎인 최대 428조원에 이른다며 재정파탄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 규모는 정부가 공식 집계한 중앙 및 지방정부의 직접채무 111조8000억원에다 정부보증채무 90조2000억원, 국민연금 잠재채무 186조원, 공적자금 추가 예상분 20조∼40조원을 포함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정부의 직접채무만을 뜻하는 국가채무의 기본개념도 모른 채 경제불안을 조장하고 있다”며 3, 4년 뒤에는 균형재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거듭 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한나라당의 경고를 ‘정치공세’라고 일축할 것이 아니라 재정상황에 대한 공개적 논의와 근본적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

정부의 가장 낙관적인 계산대로 2003,2004년부터 균형예산 편성이 가능해지더라도 1998년 이후의 누적적자를 털어내는 데 최소 15년은 걸릴 것으로 정부도 보고 있다. 더구나 정부는 98, 99년에 새로 발생한 재정적자가 각각 GDP의 3.4%(15조3000억원)와 2.9%(14조1000억원)라고 발표했지만 스웨덴처럼 금융구조조정을 위한 정부보증채 발행액의 93%를 반영할 경우 지난 2년 간에 생긴 재정적자는 각각 GDP의 9.5%(43조8000억원)와 7.6%(37조9000억원)에 이른다.

정부산하기관인 한국조세연구원(KIPF)조차도 ‘우리 재정은 통계상 순조롭게 건전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심각하게 악화돼 있는 상태’라고 분석했다. 재정적자로 인한 거시경제 부담이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1, 2년 안에 강력한 재정건전화 기조를 마련하지 못하면 정책 실기(失機)가 우려되고 앞으로 14년 이내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을지 모른다는 경고다.

박종규(朴宗奎)KIPF연구위원은 “재정적자는 자각증세 없는 암과 같다”고 지적했다. 정부여당의 방만한 재정운용 행태와 고삐 풀린 선심정책이 낳을 부작용이 두렵다. 우리 경제가 IMF위기에서 일단 벗어난 것도 97년까지 적어도 재정만은 튼튼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특단의 재정적자감축 조치에 나서야 한다. ‘나의 임기’만 넘기려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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