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왜 내는지조차 모르는 세금 많다"

  • 입력 2000년 3월 9일 19시 47분


우리나라의 세금종류는 20개 안팎인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많고 복잡하다. 그런데도 세목(稅目)이 줄기는커녕 계속 늘어나고 있다. 77년에 국세 12개, 지방세 12개 등 24개였던 세목이 9일 현재 국세 15개, 지방세 16개 등 31개로 증가했다.

문제는 세금은 한번 신설되면 관성이 붙어 폐지하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특히 목적세의 경우는 도입 당시의 명분과 취지가 완전히 퇴색했음에도 계속 존치되고 있는 실정. 납세자들도 자신이 세금을 내면서도 왜 내는지조차 모른 채 세금을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참여연대는 9일 이처럼 불합리한 세제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 사례 ▼

참여연대가 과세근거가 희박하거나 징수체계의 불합리성을 근거로 개폐를 주장하는 세목은 크게 5가지.

▽자동차면허세〓지방세법과 시행령에 의해 자동차 등록시 부과되는 세금으로 등록세와 별도의 면허세를 부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참여연대측의 주장. 더구나 자동차 등록은 한번으로 그치는데 면허세는 매년 부과된다.

또 면허세가 자동차 보유에 대한 것이라 하더라도 매년 2회 자동차세를 내기 때문에 면허세가 다시 부과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면허세 부과의 근거는 지방세법 시행령 별표에만 있어 과세대상과 세율을 법률로만 정할 수 있게 한 조세법률주의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자동차세〓자동차 소유자에게 매년 두차례 부과되고 있지만 배기량만을 기준으로 해 세부담의 형평성을 상실했다. 일종의 재산세인 자동차세는 자동차의 가액에 비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사용연한에 따라 가치가 하락하는 자동차의 특성을 과세표준에 반영하지 않는 불합리성을 안고 있다. 또 차량가격대비 자동차의 세부담이 승용차의 경우 대형(2.1%)에 비해 중형(3.4%)과 소형(2.7%)이 높은 것도 문제.

자동차 관련세금이 전체 조세수입의 20%가량을 차지해 부동산소유자가 내는 세금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참여연대 자료에 따르면 대형승용차 소유자의 연간 부담세액은 40평형대 아파트 소유자가 내는 세금의 2.2배다.

▽주민세〓사업을 하지 않는 개인에게 부과하는 세목. 소득세의 10%를 떼는 ‘소득할주민세’와 인두세 성격을 띤 ‘균등할주민세’로 나뉜다. 그러나 성격이 불분명한 균등할주민세를 따로 걷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 또 행정기관이 일일이 고지서를 발행해야 해 징수비용이 큰 반면 세수효과는 98년 기준 399억여원에 불과해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

▽목적세〓우리나라의 조세제도를 복잡하게 만드는 주범. 목적세중 교육세와 농어촌특별세는 세금에 세금을 덧붙이거나 조세감면액에 다시 세금을 물리게 되어 있어 부과체계가 매우 복잡하다.

예를 들어 농어촌특별세는 8개 세목, 교육세는 11개 세목에 부가된다. 특히 농어촌특별세는 94년부터 시작된 농어촌구조개선사업의 재원마련을 위해 10년 연한으로 걷고 있으나 이미 실패한 사업으로 평가돼 계속 부과할 명분이 없다.

우리나라의 국세 총세수에서 목적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높아져 98년기준 18.7%에 이른다. 목적세는 특별회계로 편입, 일반회계와는 별도로 운용되어 재정의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문제를 안고 있다.

참여연대 하승수(河昇秀·변호사)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은 “목적세의 비중이 높아질 경우 경제위기 극복 등 긴급한 재정수요에 대한 대응능력이 떨어진다”며 “농어촌특별세와 교육세는 본세에 흡수해 폐지하고 교통세도 정비해 석유류에 대한 과세는 특별소비세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화세〓현행 전화세법상 전화가입자는 전화사용료의 10%를 전화세로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전화세는 부가세로 통합, 조세체계를 단순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전화보유자가 200만명이던 시절 ‘사치품’에 대한 특별소비세 개념으로 만들어진 전화세를 보유자가 2000만명이 넘는 지금까지 징수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지적이 많다.

▼ 당국 입장 ▼

재정경제부와 행정자치부 등 조세당국은 현행 세제가 복잡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는 공평과세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복잡한 경로로 부과되는 농특세 등 목적세의 경우 15조원에 이르는 농어촌구조개선사업 재원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설명. 농특세는 농산물시장 개방으로 손해보는 농민을 위한 것으로서 시장개방으로 상대적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세금을 걷다보니 절차가 복잡해진다는 것.

또 자동차세는 재산세라기보다 도로 등 시설물 사용에 대해 물리는 세금이므로 차의 사용연한을 구분해 차별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기는 어렵다는 설명. 새차든 헌차든 도로를 사용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또 자동차면허세도 법적으로 면허 자체를 매년 갱신해야 하기 때문에 세금을 매년 부과하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행자부는 또 참여연대가 성격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폐지를 주장한 균등할주민세는 지방자치단체를 운영하기 위한 최소한의 세금(1만원 이내)이므로 폐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용료의 10%를 내게 돼 있는 전화세에 대해 재경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개정 제안이 들어오고 있어 법개정을 신중히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선대인·이완배기자> 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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