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과학이다]스케이트화/수공예의 승부

  • 입력 2000년 3월 9일 19시 47분


‘필름’을 2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98년 2월17일 일본 나가노 화이트링크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전.

‘빙판 신동’ 김동성은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오른쪽 스케이트 날을 들이밀며 중국의 리자준을 스케이트 날 하나 차이인 0.05차로 따돌리고 한국에 첫 금메달을 선물했다.

당시 김동성의 우승 뒤엔 두 선배의 ‘희생’이 있었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캐나다의 마크 개그넌은 준준결승에서 이준환과 부딪쳐 실격했고 복병 파비오 카르타(이탈리아)와 다무라 나오야(일본)는 준결승 A조에서 채지훈의 발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우승의 원동력이 됐던 ‘또 하나의 공신’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바로 김동성이 신었던 ‘K.S.S. 스케이트화’.

스케이트화는 스케이트 날과 함께 1000분의 1초 차로 승부를 결정짓는 스케이팅 각 종목의 경기력과 직결된다.

선수의 발에 딱 맞고 뒤꿈치와 발목을 견고하게 지지해 줄수록 우수한 제품. 그래서 나온 것이 ‘몰드화’다.

몰드화는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제품. 선수의 발을 석고로 뜬 후 발에 딱 맞는 스케이트화를 수공예로 만들어낸다. 뒤꿈치와 발목 밑부분에 방탄조끼 소재로 쓰이는 탄소섬유 캐브라를 에폭시(특수 접착제의 일종)로 6겹 포갠 후 카본으로 겉마감하면 ‘발목이 잡혀’ 킥이 잘 먹고 빙판에 착착 붙어준다. 발목 윗부분은 쇠가죽을 사용해 유연성을 높인다.

미국 메이커인 ‘마케이즈’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보급된 제품. 한국은 97년 스케이트 유통업체인 ‘K.S.S.스포츠’의 이무영사장(57) 지원 아래 납품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유오상사장(49)이 97년 2년간의 연구 끝에 개발에 성공, 대표팀 선수 전원이 이 제품을 신고 있다.

바느질까지 한땀 한땀 손으로 직접 하는 만큼 한달에 4켤레가 최대 생산량.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지난해 나란히 네덜란드 메이커인 ‘바이킹’ 제품에서 ‘메이플’ 제품으로 전원 날을 교체했다. 이유는 하나. 메이플에서 만든 스케이트 날의 두께가 바이킹보다 0.1㎜ 두꺼운 1.1㎜였기 때문.

바이킹 제품은 강한 에지를 넣으며 코너를 돌 때 날이 빙판에 박혀 순위 경쟁에 걸림돌이 됐다. 이 결점을 해소하기 위해 나온 것이 메이플 제품. 그렇다면 왜 하필 0.1㎜일까. 바로 마찰계수를 최소화하며 매끈하게 코너링할 수 있는 최적의 두께가 공학실험 결과 1.1㎜였기 때문.

그렇다고 아무나 메이플 제품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높아진 빙판 저항을 이길 수 있는 강한 체력을 갖춘 선수에게는 보물이지만 반대의 경우 오히려 스피드를 낼 수 없게 된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스케이트 날이 신발 밑바닥에 고정된 기존 스케이트와 달리 뒤축이 발꿈치에서 붙었다 떨어졌다 해 스피드 향상에 탁월한 효과가 있음이 입증된 클랩 스케이트가 95년 바이킹사에서 처음 개발된 후 이미 일반화돼 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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