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금덕/원화가치 시장에 맡겨라

  • 입력 2000년 2월 17일 19시 40분


1997년 12월 외환위기가 심화되면서 달러당 원화가치가 2000원대까지 급락했다. 그 후 원화가치는 꾸준히 상승해 98년 말 1207원, 99년 말 1145원대를 기록했다. 2000년 들어서도 이 같은 추세가 지속돼 최근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인 1114원대까지 상승했다.

최근 2년 동안 외환시장에 나타난 뚜렷한 특징은 두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하나는 원-달러 환율이 장기적으로 하향 안정돼 가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하향 안정 속에서도 하루 변동폭이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환율이 하향 안정되고 있는 주요인은 무엇보다 위기 이후 경상수지가 계속 흑자기조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98년 406억달러에 이어 지난해에도 260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통상적으로 국가 경제가 위기국면에 있을 때 투자자들은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기 때문에 자본수지보다는 경상수지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이점에서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그동안 지속된 경상수지 흑자가 환율을 하향 안정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해 원화가치가 절상될 것인가. 절상된다면 그 상한선이 어느 정도일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이에 대한 해답 또한 우리의 경상수지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서 찾아야 한다.

지난 2년 동안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경상수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무역수지가 98년 412억달러, 99년 245억달러의 큰 폭의 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 들어 1월중 무역수지가 26개월 만에 처음으로 4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있음에도 최근 원화가치가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유입에 힘입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 당국도 이를 염려해 외환시장에 개입해 원화가치의 절상을 억제하고 있다.

16일 데이비드 포 국제통화기금(IMF) 서울사무소장도 원화가치가 너무 빠른 속도로 절상되고 있는 것은 아직 한국이 완전히 경기회복을 하지 못한 상황인 만큼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경상수지의 급격한 감소를 우려해 정부의 외환시장개입을 용인하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무역수지뿐만 아니라 최근 여행수지도 악화돼 경상수지 흑자폭은 빠른 속도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향후 경상수지 흑자로 인한 풍부한 외환공급이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경상수지가 악화되면 외국인들의 투자의욕이 줄어들기 때문에 최근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유입에 의한 원화가치 절상을 크게 우려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따라서 정부 당국은 단기적인 수출증대를 위해 무리하게 외환시장에 개입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동안 지속된 원화가치의 절상이 무역수지를 악화시키고 이는 또 다시 경상수지의 악화로 이어져 원화가치를 절하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원화가치 절하를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하고 경제를 회복시키려는 정부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평가절하가 경제에 미치는 정도는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무역의 중요성, 임금의 반응정도, 경기순환의 국면 등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그들의 실질임금 하락을 기꺼이 감수할 용의가 있거나 경제가 충분한 여분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을 때에만 평가절하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 경제는 GDP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에 따른 원화가치 절하는 일시적인 무역수지 개선에 도움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가상승과 이로 인한 임금상승으로 이어져 그 효과가 소멸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원화가치 절하를 통해 무역 및 경상수지를 개선하는 정책보다는 생산성 향상이나 기술수준 진보를 통한 경쟁력 향상, 저축증대, 긴축재정 등을 실시하는 정책이 보다 나은 치료약이 될 것이다.

신금덕 <외환은행경제연구소 국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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