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영/'눈물'없는 세계화를 향해

  • 입력 2000년 2월 14일 19시 31분


지난해 12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연례 각료회의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비정부기구(NGO) 시위대로 인해 큰 홍역을 치렀다.

이 시위대는 이달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막된 세계경제포럼(WEF)에도 몰려와 또 한 차례 ‘소동’을 일으켰다.

두 번의 사태를 겪은 뒤 각국은 세계화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시애틀맨’,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세계화의 기수들을 ‘다보스맨’이라는 신조어로 부르기 시작했다.

현재 태국 방콕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는 전세계 40개국에서 몰려온 ‘시애틀맨’들이 격렬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과연 이들의 충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와는 아무 관계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까.

세계화, 정확히 말해 모든 나라가 경제의 국경을 없애고 결과적으로 미국식 경제로 통합되는 시스템에 대한 저항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농산물 수입 개방을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을 경험한 바 있다.

대외적으로 세계화는 모든 나라가 동일 조건으로 경쟁해야 함을 의미한다. 마라톤 경기에서 이미 20㎞쯤 달려나간 선진국이나 아직 출발선상에 서 있는 후진국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국가간 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는 논의는 강자들의 모임인 서방선진8개국(G8) 회담에서조차 몇 년전부터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국내적으로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뛰어난 효율성이 국가경쟁력을 강화해주는 반면 부익부빈익빈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을 가장 먼저 도입해 경제회복에 성공한 미국 영국 뉴질랜드에서 과거 10년간 하위 50% 계층의 소득은 절대액수가 줄었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서가 나온 지도 벌써 3년이 되어간다.

요약하면 세계화로 상징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두 얼굴은 ‘뛰어난 효율성’과 ‘야만성’이다. 다보스맨들은 효율성에 주목하고 시애틀맨들은 야만성에 비중을 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국가부도 위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경제는 회복됐지만 IMF 사태로 발생한 서울역 지하도의 노숙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현재 우리가 추구하는 경제는 이들의 고통을 자신의 무능과 태만에 따른 것으로 방기하는 시스템이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능률면에서 현존하는 최선의 체제이다. 반면 사회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에 소홀한 단점을 갖는다.

올들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유럽) ‘따뜻한 자본주의’(일본)에 대한 논의가 터져나오고 시애틀맨들의 시위가 계속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문제는 나라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연대감도 잃지 않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고민은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를 어떤 나라로 만들어 자녀들에게 물려줄 것인지에 대한 성찰을 포함한다.

총선에 출마하는 후보들이라면 적어도 이만한 ‘고민의 무게’와 여기에 따른 ‘미래의 비전’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김상영<경제부차장>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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