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법부에 새바람 불까

  • 입력 2000년 2월 10일 19시 53분


대법원이 마련한 ‘21세기 사법발전계획’은 그동안 사법부 안팎에서 중점 논의해온 현안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법관의 독립성을 비롯해 재판의 공정성 효율성 전문성 문제, ‘없는 사람들’의 재판을 돕는 시스템, 들쭉날쭉한 양형(量刑)의 문제 등에 관해 폭넓은 개혁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국민을 위한 사법’에 주안점을 뒀다는 게 대법원측의 설명이다. 아닌게아니라 국선변호제도를 구속된 모든 피고인과 피의자는 물론 거의 모든 불구속 피고인에게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은 획기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보다 관심을 갖는 대목은 법관 인사에 관한 문제다. 법관들이 신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거나 승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인사권자(대법원장)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고 이것은 결국 판결내용에까지 영향을 끼칠 위험성이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법관들이 보직이나 승진을 의식한 나머지 ‘위의 뜻’을 헤아려 재판을 하려한다면 국민의 법감정, 정의관념과 거리가 먼 판결을 하게 될 수 있다.

인사제도의 대표적 문제로 꼽혀온 것이 지방법원 부장판사에서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로의 발탁승진과 법관재임명제도다. 대법원은 이번에 대법관을 제외한 모든 법관에게 단일호봉제를 실시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 방안은 불필요한 직급을 없앰으로써 고법부장 승진에서 탈락한, 그러나 경륜 있는 지법부장들의 무더기 사직을 방지해 재판의 공백과 질 저하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차제에 ‘대법원장에 의한 사실상의 파면제도’라는 비판을 듣고 있는 재임명제도도 재검토해 보기 바란다. 10년 주기(대법관은 6년)의 이 제도는 ‘자격미달 법관’을 솎아내는 방안으로 도입된 것이지만 아무런 법적 절차와 기준 없이 시행되고 있어 법관의 독립성을 해치는 요인의 하나로 지적된다. 이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평가의 객관성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를 둬야 한다.

현행 법관인사제도의 폐단은 그뿐만이 아니다. 많은 법관들이 언젠가는 자신도 변호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재판에 임하고 있다. 어느 중견법관은 “법원이 마치 거물 변호사 양성소처럼 돼 있다”고 개탄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은 ‘전관예우’라는 법원의 고질적 비리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되고 있다. 대다수의 법관이 끝까지 법관으로 남으려고 하는 환경이 조성될 때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은 훨씬 견실해질 수 있다. 한편 유능한 변호사와 법대 교수를 법관으로 특채하는 법조일원화도 더욱 확대하는 것이 사법부의 새 바람을 위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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