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는 말할 것도 없이 헌법의 최고 해석기관이다. 헌법의 정신과 질서를 수호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나라에 따라 대법원이 그 역할까지 담당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는 88년9월 헌재를 별도로 발족시켜 13년째를 맞았다. 그동안 헌재는 헌법과 관련된 많은 쟁송(爭訟)들을 다뤄 오면서 때로는 정치권과 행정부를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등의 일부 비판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는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막는 데 나름대로 기여해 이제 없어서는 안될 국가기관으로 정착했다는 게 우리의 평가다.
특히 헌재는 대립되는 양쪽의 이해관계를 적절히 조화, 조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번 경고가 나오게 된 세금관련 사건도 바로 그런 경우에 속한다. 헌재는 ‘법률’의 형식으로 규정해야 할 과세요건을 아래 단계인 ‘대통령령’에 포괄적으로 위임한 것은 헌법상의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종전 관행처럼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릴 것이냐, 아니면 ‘위헌’결정을 내릴 것이냐를 놓고 재판관들의 의견이 갈라졌다. 사실 조세사건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 관행은 세금을 중단없이 거둬들여야 하는 과세관청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다. ‘위헌’결정을 내리면 해당 법률의 효력이 즉시 없어지기 때문이다.
행정부가 이 같은 헌재의 배려를 계속 악용해온 것이 이번 경고의 배경이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지면 해당부처는 조속히 법개정을 추진해 위헌상태를 최대한 짧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더라도 관련법이 개정될 때까지는 과세처분의 효력이 유지되므로 국민은 골탕을 먹을 망정 과세관청은 불리할 게 없다. 이 때문에 해당부처는 계속 게으름을 피워온 것이다. 보다 못한 헌재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이번 경고를 내린 것이다.
이번 역시 헌법불합치 결정에 그치고 말았지만 행정부에서는 이번 경고를 더 이상 흘려버려서는 안 된다. 국민의 조세저항을 유발하고 헌재에 부담을 키우는 행정부의 태만에 대해서는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