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민단체 선거운동 어디까지

  • 입력 2000년 1월 9일 19시 54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4월 총선을 앞두고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주장해온 공천감시 및 낙선운동 등 선거운동을 어느 선까지 허용할 수 있을지 전향적인 검토에 착수했다는 보도다. ‘전향적 검토’에서 알 수 있듯이 선관위는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을 일절 금지하고 있는 현행 선거법 87조를 보다 융통성 있는 유권해석으로 신축적으로 적용해 사실상 시민단체가 벌이는 선거운동의 위법범위를 축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현행법의 테두리 안이라면 될 수 있는 한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우리는 선관위의 이같은 입장에 동의한다. 비록 그 뜻이 옳다고 해도 관련법이 개정되기 이전에 그 법 자체를 무시한다는 것은 ‘법치의 붕괴’라는 보다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비리관련자 등의 낙선운동을 펴기 위해 선거법 87조의 개정운동을 계속 해나갈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1월 이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와 관련해 합헌결정을 내렸고 정치권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이어서 이번 총선 이전에 법이 개정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듯싶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의 선거운동은 현행법이 존중되는 선에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야(與野) 정치권은 시민단체들의 이런 운동이 돌이키기 어려운 시대의 큰 흐름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낡은 정치’ ‘썩은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는 대의에는 국민의 절대적 다수가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행 선거법을 위반하면서라도 ‘낙선운동’까지 벌이겠다는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1개 시민단체는 “특정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은 국민의 참정권을 행사하는 하나의 유력한 방법으로 불법행위가 아니다”고 주장한다. 현재와 같이 정치적 보스의 뜻에 따라 밀실에서 진행되는 공천으로는 국민의 뜻이 반영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신 있게 아니라고 답할 수 있는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있는가. 시민단체들이 무슨 공정성과 객관성으로 낙선운동까지 벌인단 말이냐고 볼멘소리를 하기 전에 이제라도 민주적이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깨끗하고 능력 있는 후보를 유권자 앞에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어느 정치인도 시민의 감시 눈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이를 알지 못하는 정치인은 퇴출의 운명을 면하기 어렵다.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이 정치개혁에 실질적 힘으로 작용하는 한 그것을 묶어만 둘 수는 없다. 다만 현 단계로서는 ‘현행법의 범위 안에서’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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