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산업-관광]미국 포틀랜드시의 꿈

  • 입력 2000년 1월 5일 20시 00분


북미대륙의 분수령인 로키산맥에서 발원, 서쪽으로 흘러 태평양으로 유입되는 컬럼비아 강의 하구, 오리건주 포틀랜드는 컬럼비아 강이 태평양과 만나는 하구에 있는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스포츠용품메이커인 나이키 본사가 있고 이 때문에 의류 신발 구입시 물품세를 부과하지 않는 곳, 미국 스키대표팀이 하계훈련장으로 이용하는 만년설산 마운트후드(해발 3,424m), 거대한 강과 아름다운 폭포가 절경을 이루는 컬럼비아 협곡이 있는 곳. 그러나 주민들의 자랑거리는 ‘보행자 천국’을 이룩한 도심의 다운타운이다.

포틀랜드시 다운타운에 들어서면 이곳이 미국인지 한번쯤 의심하게 된다. 너무도 조용하고 차분한 거리 분위기 때문이다. 우거진 가로수, 거리 한가운데를 천천히 달리는 전차, 거리를 장식한 크고 작은 조각품…. 고즈넉하기까지 하다.

어떻게 이렇게 한가로울까.이유는 통행차량이 적은 탓이었다.더 정확히 표현하면 일반차량의 도심통행은 억제하고 대신 버스 전차 도보를 이용토록 한 거리설계 덕분이다. 다운타운을 지나는 노선버스는 오히려 미국내 대도시 못지 않게 많다. 그런데도 혼잡은 느낄 수 없다. 노선버스가 통과하는 도로에 다른 차량의 진입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보행자를 위한 배려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맥스(MAX,Metropolitan Area Express)라고 불리는 전차는 도심구간에 한해 탑승이 무료다. 도심 내 최장 4,5블록은 맥스를 타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탑승장에는 자동발권기 옆에 노선안내도를 설치해 관광객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버스정류장에는 비를 피할 수 있게 투명아크릴로 만든 대합실이 있다. 그 안에는 노선 및 버스발착시간을 보여주는 모니터도 있다. 보도 역시 아무리 걸어도 어깨를 부딪치거나 마주칠 염려가 없을 만큼 널찍하다

▼포틀랜드 프로젝트▼

‘살기 좋은 도시’ 포틀랜드는 94년부터 ‘여행하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것은 세계각국의 여행자들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도시가 되도록 도시에 인류공동의 언어로 이용될 ‘상징그림’(픽토그램) 표지판을 설치하겠다는 것. 그 주창자는 베라 캇츠 현 시장이다. 그녀의 희망은 언어 피부 문화 종교가 서로 다른 인류가 상징그림(픽토그램)을 통해 어디에 서고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는 지구촌을 만들자는 것. 이를 위해 포틀랜드시는 95년에 20년계획으로 ‘포틀랜드 픽토그램 프로젝트’에 착수, 국제적으로 공유할 만한 상징그림 개발에 나섰다.

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핵심인물은 ‘디자인 퍼시피카’라는 디자인회사 대표인 토드 피어스. 80년대말 뉴욕지하철의 안내표지시스템 디자인을 맡았던 시각디자이너로 그는 연구 조사 끝에 지난 95년 165개의 상징그림을 1차로 채택해 전세계에 전파시키고 있다.

“포틀랜드 항만국과 운송국 등지에서 사용중인 상징그림을 수집해 미국건축가협회, 호텔숙박업협회, 장애인단체의 대표에게 보여 주며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 국제적 이해도 측정을 위해 각국의 유학생을 참가시켰습니다. 이렇게 해서 최종선택한 것을 CO-ROM과 책에 담아 판매하고 동시에 전세계 사용자로부터 계속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피어스는 “상징그림을 통해 지구촌을 ‘글로벌 메트로폴리스’로 변화시키는 게 포틀랜드시의 꿈”이라면서 “지금도 계속 새로운 상징그림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틀랜드시는 이렇게 개발한 상징그림을 1차로 포틀랜드시와 자매결연 관계에 있는 세계 13개 지방자치단체에 무료로 제공, 널리 사용토록 하고 있다.

▼상징 표준화작업▼

세계의 관심은 이제 ‘상징그림의 표준화’를 통해 관광을 진흥시키는데 모이고 있다. 세계관광기구는 89년 이 분야의 연구를 시작했고 97년말에는 ‘전세계 통용가능한 상징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역내국가를 중심으로 상징그림의 표준화를 위한 조사연구가 진행돼 지난해 최종보고서까지 나왔다.

지구촌에서도 아태지역 국가가 이 분야에서 앞장선 것은 이 지역이 21세기에는 지구촌관광의 중심으로 예상되기 때문. 98년 전세계 해외여행시장에서 아태지역의 비중은 여행자(6억4000만명)의 28%, 관광매출액의 37%를 차지했을 정도. 향후 20년내에 관광객 수는 33%, 매출은 40%까지 신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면 한국의 상징그림 표준화는 어느 정도일까. 대답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98년 APEC의 관광실무위가 역내 13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외국인관광객을 위한 표지판의 표준화 여부’조사 결과 한국은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조사를 맡았던 허갑중박사(한국관광연구원)는 “서울의 지하철 표시마저도 세 가지로 각기 다르고 제주도의 민박표지는 국제관광도시에 걸맞지 않아 부끄러울 정도”라면서 “관광표지를 표준화 하지 않으면 국가이미지까지 손상돼 결과적으로 외국인관광객 유치와 관광산업 선진화에 장애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한자병기 표지판 설치에 나서는 등 관광표지판 개선작업에 나선 우리 정부에게 포틀랜드시의 상징그림 표준화 프로젝트는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오리건주 포틀랜드(미국)=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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