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하현/善心 남발하다 경제위기 온다

  • 입력 1999년 12월 14일 19시 39분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득표에 유리한 정책을 사용하는 방식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른바 ‘정치적 경기변동이론’에 따르면 집권당은 선거 8개월 전부터 통화 공급과 각종 지출을 늘리고 이자율을 낮추어 경제성장을 촉진시키려 한다. 그러면 국민은 소비증가와 실업감소 등 달콤한 ‘꿀’을 맛보게 돼 장래에도 무지개빛 환경이 계속될 것으로 기대하고 집권당을 지지한다. 그러나 선거후에는 인플레이션 실업증가 등 여러 부작용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정책이 마구 쏟아지고 있으며 기존 정책방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사업기간조차 미정인 고속도로 건설계획과 사회편익보다 비용이 높아 타당성이 낮은데도 정부예산을 배정받은 일부 사회기반시설(SOC) 건설사업 등이 좋은 예이다.

정부의 세제개혁 방향도 흔들린다. 정부의 세제개혁안은 국회 심의과정에서 대폭 변질됐다. 정부안이 국회 심의과정에서 수정된 내용을 살펴볼 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소득분배 개선과 자영업자의 탈세를 막기위해 장기적으로 간이과세를 폐지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국회는 매출액 상한을 높여줌으로써 수혜 대상자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대주주의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누진세율 부과방안도 보유기간 1년 미만의 경우에만 적용하기로 함으로써 당초보다 크게 후퇴했다. 이러한 정책의 급선회가 봉급생활자의 불만해소보다는 고소득 자영업자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것이 내년 총선득표에 더 유리하다는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각종 세금감면 정책도 신중히 시행돼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엄청난 공적자금이 쓰여졌으며 앞으로 상당액이 더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정부 재정적자의 누적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선심성 세금감소 정책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세금감소는 언젠가 ‘미래세금의 증가’를 가져올 것이다.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된 조치도 상당히 우려된다. 그린벨트 내 토지의 44.5% 정도가 원주민이 아닌 외지인의 소유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린벨트 해제를 남발하는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의문이 든다.

IMF 경제위기 후 만 2년. 한국경제가 예상보다 상당히 빠른 회복세를 보인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된다. 현재의 고성장은 과거문제의 극복보다는 엔고, 반도체 특수 등 대외경제 여건의 호조에 힘입은 바 크다. 더욱이 현재의 경제성장은 수출의 급성장과 소비 급증에 의한 것이다. 정부의 의도적인 저이자율 정책이 투자촉진보다는 소비급증에 기여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상반기 저축률이 85년 이후 가장 낮게 나타난 것도 이같은 상황을 잘 말해 주고 있다. 국내저축의 부족은 해외차입의 증가를 가져와 한국경제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정치적 이득을 위해 행해지는 선심정책이 득표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국가경제의 장기적 발전에 저해된다는 사실을 유념하지 못하면 또 다시 경제위기의 싹을 키우게 될 것이다.

조하현<연세대 교수·경제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