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미스터]홈페이지 없으면 원시인? …'내집마련' 열풍

  • 입력 1999년 11월 21일 20시 28분


“축하합니다. 집 장만하셨군요.”

주말 한나절, 그리고 일주일 내내 하루에도 몇시간씩 ‘분칠’하고 공들여 10월 개인홈페이지를 연 손수진씨(26·여). 금융컨설팅 서울포렉스에 근무하는 그의 홈페이지 이름은 ‘달러와 원’이다. 가상의 공간에 ‘터’를 잡은 것이 현실공간에서 집 장만한 것 만큼 뿌듯하다.

['가상영토' 개척 한창]

요즘 젊은 직장인 사이에 ‘사이버 영토’ 개척이 한창이다.

이전엔 홈페이지 작성언어인 ‘html’을 알아야만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MS프론트페이지’ ‘나모웹에디터’ 등 간편한 도구가 나오면서 누구나 쉽사리 만들 수 있게 됐다.

또 6월말 정부가 개인도메인 등록을 허가하고, 네띠앙 라이코스 등 인터넷서비스업체에서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공간 10∼20Mb를 무료제공한 것도 이에 한몫했다.

그러나 관리는 여전히 쉽지 않은 일. 매주 홈페이지의 3∼5%를 새롭게 바꿔야 생명력을 갖는다고 삼성경제연구소 신현암수석연구원은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찾지 않는 ‘폐가(廢家)’로 전락하기 십상. 일주일에 최소한 서너시간은 투자해야 하는 ‘짐’을 구태여 왜?

[화장하듯 정성 쏟아]

▼또다른 나, 홈페이지▼

9월에 홈페이지를 연 직장인 나모씨(28·서울 마포구 도화동)는 출근과 함께 방명록을 챙기고, 퇴근할 땐 그날의 방문건수를 확인한다. 출근시간을 한 시간 앞당기고 때로는 휴일에도 회사에 나와 30분∼1시간 컨텐츠 관리. 최근 ‘아토스 1년 차계부’를 올려 ‘살아있는’ 정보라는 피드백도 받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도 ‘어떻게 지내셨어요?’라고 인사하지 않아요. 아내가 임신한 이야기 등 요즘 내 생활이 홈페이지에 그대로 들어있으니까요.”(나씨)

유승식(29) 주세은(24)부부의 홈페이지는 두 사람의 소사(小史). 사진첩엔 ‘우리 둘이 만들어온 삶의 조각, 연애시절’ ‘찍느라고 넘넘 힘들었던, 결혼사진’ ‘알맞게 달궈진 태양 등 하와이, 신혼여행’에서의 모습을 사연과 함께 순차적으로 담았다. 또 ‘아가가 태어나면 채울 미공개 앨범’ 등 태어날 2세를 위한 공간도 배려.

홈페이지는 ‘나의 확장’이자 자신을 구체화한 것이라는 게 연세대 황상민교수(심리학과)의 분석.

“홈페이지 관리는 화장(化粧)하는 마음과 같다. ‘또다른 나’를 가꾸면서 남에게 비춰질 나의 모습에서 정체성도 확인한다.”

‘자기복제’가 가능한 가상공간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하나가 아닌 ‘수십가지의 나(멀티플 아이덴티티)’로 확장되기도 한다. 네티즌이 종잡을 수 없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

황모씨(34·인천 계양구 작전동)는 “직장생활에서 벽을 느낄 땐 홈페이지로 눈을 돌린다”고 말한다.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그들은 홈페이지(가상공간)를 통해 전혀 다른 얼굴로 표현된다. 때론 현실의 관계보다 가상에 더 몰두하기도.

['동호인 공동체' 구성]

▼‘나를 방송한다’▼

환경개발을 반대하는 삼성경제연구소의 강신겸연구원(32). 국내에선 아직까지 소수파다. 그는 학회 등에선 비주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며 올초 녹색관광 생태관광을 주제로 홈페이지를 열었다. “내 의견에 동조하는 네티즌이 많다. 내 의견이 그들로부터 공감받을 때 보람을 느낀다.”

홈페이지는 스스로 방송사를 차려 자신을 내보내는, 그리하여 매스미디어의 위력을 직접 창출하는 ‘개인 방송국’인 셈. 그러나 전문가들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만 매달린다면 인터넷의 핵심인 정보로서의 가치는 없고 네트워크의 공간만 차지하는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또 심한 경우 방문횟수의 증가세가 주춤하면 불안하고 초조한 ‘금단현상’에 시달릴수도 있다는 지적.

[광고 유치 부수입도]

▼열린 기회의 ‘땅’▼

삼성SDS의 이종혁대리(29)가 올 3월 개설한 홈페이지의 지난 달 접속건수는 1만5000여건. 그는 4년간 홍보에 매달려온 실무경험으로 네티즌을 ‘잡았다’. 올초 ‘사이버시대의 홍보전략’이라는 책을 펴냈을 정도.

그는 “정보공유의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홈페이지를 통해 만난 ‘인적자원’은 500여명”이라고 말한다. 접속건수를 바탕으로 다음 달엔 광고도 유치할 생각. 인건비를 제외한 한달 투자비용은 홈페이지 임대료 9900원이지만 최소한 월100만원의 부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취미로 만든 홈페이지도 일단 ‘뜨면’ 최상의 벤처가 될 수 있다. 네티즌은 직관적으로 뭐가 돈이 되는지를 몸으로 느끼는 세대다. 자기표현의 예술작품이 때로는 돈이 된다고 비난하는 이는 없지 않은가.”(황상민교수)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클릭" "톡톡" 홈페이지 손쉽게 뚝딱▼

마우스클릭만의 간편한 홈페이지 제작 서비스와 공간을 제공하는 인터넷정보업체로 △LG인터넷의 마이페이지(mypage.channeli.net) △네띠앙의 넷시티(www.netian.net) △라이코스코리아의 트라이포드(www.tripod.co.kr) △테크노필의 하이홈(www.hihome.com) 등이 있다.

그러나 보다 정교하게 홈페이지를 만들고 싶다면 홈페이지 작성도구인 나모웹에디터(www.namo.co.kr)를 이용한다. 또 MS프론트페이지 핫도그프로페셔널 드림위버 등도 아트미디어(www.artmedia.org)나 보물(www.bomul.com)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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