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세상읽기]大學의 남성할당제

  • 입력 1999년 11월 15일 20시 04분


정부와 공공기관, 정당의 주요 직책 30%를 여성에게 할당하겠다던 김대중대통령의 선거공약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대학들은 벌써 20년 전부터 여성할당제를 시행했다. 여성 할당 비율도 50%나 되니 가히 파격적인 제도라 하겠다. 그런데 이상한 일도 다 있다.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위원장 강기원)가 서울대 홍익대 성균관대 건국대 등의 미술계열과 서울대 연세대 경희대 상명대 등의 음악계열에 대해 이러한 여성할당제를 명시한 신입생 모집 요강의 시정을 요구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학부모들의 시위도 자못 흥미롭다. 예능계 여학생의 부모들은 이 여성할당제의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수험생 아들을 둔 학부모들은 거꾸로 여성특위의 조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런 이상한 시위가 벌어진 것은 이 제도가 사실은 여성할당제가 아니라 남성할당제이기 때문이다. 전국 예체능계 고등학교의 남학생은 전체 재학생의 10%에 불과하다. 남성할당제가 없으면 미술 음악 등 예능계 학과는 여학생들이 휩쓸게 된다. 대학의 해당 분야 학과를 지배하는 남자들은 이것을 일종의 재앙으로 본다.

그래서 만든 것이 예술계의 지나친 여성화를 막기 위한 남성할당제였다. 남자들은 이런 종류의 ‘재해방지대책’을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에도 적용하고 싶어한다. 교단의 여성화가 교육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그 이유다.

대한민국 남자들, 정말이지 옹졸하고 쩨쩨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건 말할 나위도 없다. 도대체 여자들이 왜 교직과 예술 분야에 몰리는가. 잘 나가는 다른 분야를 모두 남자들이 장악하고 있으니 여자들이 그런 분야에 몰리는 것이다. 그것마저 남성할당제를 만들어 봉쇄를 하겠다고?

지나친 여성화를 문제시하는 논리도 옹색하기 짝이 없다. 나는 여성화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중용과 균형이 좋다고들 하니까 남녀가 반반씩 섞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치자.

그러면 당연히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지나친 남성화는 문제가 없는가. 우선 정치권을 보면 거의 완전한 남자들의 잔치다. 주먹다짐과 멱살잡이가 심심치 않게 터지는 것은 지나친 남성화 때문이 아닐까? 공공부문의 고위직도 남자들의 독차지다. 난잡하기 짝이 없는 접대문화와 뇌물 없이 되는 일이 별로 없는 공공부문의 부패도 지나친 남성화와 뭔가 관계가 있지 않을까? 국가안보와 사회의 안녕 질서를 책임지는 공안기관도 남자들의 세상이다.

전기고문과 물고문이 판을 쳤던 것도 정형근의원이나 이근안씨처럼 물불 가리지 않는 사나이들만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신입생 환영회나 동아리 축제에서 필름이 끊어지도록 술을 마시고 연례적으로 사고를 치는 대학생들의 난폭한 음주문화도 대학에 남자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닐까? 이 모든 불행한 재앙을 예방하기 위해서 사회의 모든 분야에 대학 예능계열과 같이 ‘남녀할당제’를 도입하자고 하면 남자들은 무어라 할 것인가.

금년 7월부터 시행된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대학의 ‘남성할당제’는 명백한 위법행위다. 지성의 산실인 대학마저도 법률의 강제가 있어야만 마지못해 불합리한 제도를 고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유시민(시사평론가) denkmal@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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