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배인준/'밑빠진 독' 賞

  • 입력 1999년 11월 14일 18시 50분


회계연도가 끝나기 전에 예산을 다 써버리기 위해 하필이면 영하(零下)의 겨울에 멀쩡한 도로를 파헤치고 보도블록을 갈아끼우는 ‘12월의 열병(熱病)’현상이 올해는 반복되지 않을까. 내년 봄엔 총선까지 있으니…. 해외공관에서도 불용(不用)예산을 남기지 않으려고 연말에 비싼 포도주를 수백병씩 구입해 나눠먹는 일은 또 없을지 모르겠다.

▽정부와 준(準)정부기관 등 공공부문의 혈세낭비 불감증이 치유될 기미가 없다. 잇따라 발표되는 감사원의 감사결과나 시민단체들의 추적결과만 보더라도 그렇다. 환경부가 600억원대의 연구용역비를 헛쓰고 한국전력이 100억원대의 홍보비를 탕진한 것 등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예산 오남용(誤濫用)만도 3조원이 넘는다는 한 시민단체의 분석 역시 부분적이다. 경실련은 작년 한해의 예산낭비만도 10조원에 이른다는 백서를 낸 바 있다.

▽고전파 경제학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간부문의 낭비에 의해서는 큰 피해가 없지만 공공부문의 낭비에 의해서는 위대한 국가일지라도 가난해지거나 망할 수 있다.’ 보수적인 정부추계로도 우리의 국가채무가 111조원에 이른다니 ‘위대한 국가’로 자처하기도 어렵다. 정부의 채무보증까지 포함한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42%인 205조원을 넘을 것이라고도 하니….

▽그런데도 정부 등 공공부문은 혈세의 낭비요인을 없애려는 노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납세자연맹이 맹위(猛威)를 떨치는 유럽 각국이나 회원 60만명의 예산낭비감시 시민단체가 활동하는 미국처럼 강력한 납세자 자구(自救)운동을 펴야 할 모양이다. 회원 45만명의 독일납세자연맹처럼 예산낭비가 심한 부처나 지방자치단체를 찾아내 ‘밑빠진 독 상’도 수여하고 선거직(選擧職) 관계자들은 모조리 낙선시키는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까 보다.

〈배인준 논설위원〉inj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