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천년특집]정신질환 약물치료만이 만능인가

  • 입력 1999년 10월 28일 18시 58분


나는 지금 임신 14주째다. 그런데 심한 우울증 때문에 프로잭이라는 약을 먹고 있다.

의사는 내가 지금 우울증 증세를 겪고 있는 것은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프로잭의 복용을 중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설명을 믿을 수가 없다. 내가 그 약을 먹지 않은 것이 고작 5일, 기껏해야 1주일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그래서 나는 다른 의사를 찾아갔다. 그 의사는 첫 번째 의사의 의견을 반박하면서도 그의 의견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의견을 내놓았다. “임신 기간 중에는 프로제스테론(여성 호르몬의 일종)이 늘어나기 때문에 임신한 여성 중 10%가 우울증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의사 화학적처방 급급▼

두 의사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이 겪고 있는 고통을 화학적으로 설명하려 한다는 점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은 두 의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간의 정신적 고통을 생리학적으로 설명, 치료하려는 시도는 옛날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화학적인 방법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성격을 없애버린다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때 인간의 다양성을 모두 없애버린다는 뜻이 되는 게 아닐까? 물론 모두 다 똑같은 낙관주의로 가득 찬 로봇같은 사람들이 득실대는 세상이 정말로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천년에 새로 개발될 약들이 의학적 사회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정신의학은 언제나 치료제를 투여한 다음 병명을 진단하는 방식으로 환자를 치료해왔다. 예를 들어 자기 몸속에 외계인이 들어 있다고 주장하는 여자가 토라진이라는 약을 먹고 제정신을 차린다면 그녀의 병명은 정신 분열증이 된다. 따라서 인간의 성격을 더 많이 바꿔놓을 수 있는 약들이 개발될수록 질병의 종류도 늘어날 것이다. 만약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을 약으로 고칠 수 있다면 수줍음도 질병이 되어버릴 것이다. 질병은 우리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다.

약으로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것은 또한 환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내 경우를 예로 든다면 내 우울증의 ‘원인’이 되었던 사람들과의 관계나 힘겨웠던 순간들은 물론 어머니의 향수냄새에 대한 기억 등이 나의 우울증 치료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살아온 인생 고려안해▼

어쨌든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배는 계속 불러오고 있다. 내가 먹고 있는 약이 내 아이에게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벌써 클라라라고 이름 지은 그 아이는 나중에 자기 성격을 설명하면서 내가 복용했던 프로잭을 들먹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클라라에게 진심으로 말하고 싶다. 자신을 파악하기 위해 과거를 돌아볼 때, 제발 엄마와 아빠를 잊지 말아 달라고.

▽필자〓로렌 슬레이터(작가)(http://www.nytimes.com/library/

magazine/millennium/m5/prozac―slater.html)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