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실태]대기업들 '겉으론 공채 속으론 특채'

  • 입력 1999년 10월 26일 18시 36분


지방 K대에서 취업지원을 담당하는 김모씨(33)는 국내 굴지의 H전자에서 신입사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회사측에 채용 일정을 문의했다가 어이없는 대답을 들었다.

“지방 K대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이었다.

최근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 계획을 발표하고 있지만 주로 명문대와 인기학과 위주로 신입사원을 뽑는 ‘말로만 공채’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현상 때문에 일부 명문대를 중심으로 취업의 숨통이 트여가고 있는 반면 지방대생과 비명문대생들은 채용 정보와 응시 기회가 적어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직후나 지금이나 별 차이없는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각 대학 취업담당자들에 따르면 서울의 일부 명문대에는 최근 대기업들이 잇따라 취업 설명회를 갖거나 채용담당자들을 보내 원서를 나눠주며 인력확보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서울시내 한 대학에는 이달초 K그룹 인사부 직원들이 학교에 직접 찾아와 입사원서를 나눠주며 학생들과 ‘취업상담’을 했다. 이들은 “이 원서는 서울시내의 몇 개 대학에만 돌리는 것”이라는 귀띔과 함께 근무조건과 연봉 등에 대한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대기업들이 이처럼 명문대를 위주로 대학 선후배간의 추천에 의한 ‘연고채용’을 하거나 특정 대학만 선별해 원서와 추천서를 보내는 방식을 고수할 경우 비명문대생이나 지방대생들의 취업 문호는 좁아질 수 밖에 없는 것. 이들은 심지어 기업의 채용 사실조차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지방 C대의 취업지원실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올 하반기에 1만6000여명을 공채한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40% 이상이 이같은 ‘말로만 공채’형식의 선발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한 대학의 관계자는 “공채를 한다고 신문광고를 내놓고도 원서접수 뒤 회사측이 학교와 학과에 등급을 매겨 지방대와 비명문대 출신을 먼저 걸러낸다는 것은 학생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지방대와 비명문대생들이 느끼는 ‘취업 콤플렉스’는 큰 사회문제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지방대생들은 “인터넷 원서접수가 지방대생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토익과 학과점수가 좋아도 연락이 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 오히려 기피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대학졸업을 앞둔 여대생들이 취업전선에서 받는 또다른 ‘성차별’도 아직 여전하다.

서울 S대 장모씨(23·경영학과)는 “여학생들을 서류전형에서부터 탈락시키는 기업이 많기 때문에 학교에 추천서가 와도 남학생 위주로 배분하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코리아리크루트 민진(閔塡)정보개발팀장은 “이같은 채용 추세는 기업 입장에서는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 고급 인력을 뽑을 수 있기 때문에 선호하는 것 같다”며 “그러나 지방대와 비명문대 출신 그리고 여성이 공개경쟁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배제되는 현재의 채용방식은 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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