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原電안전 구멍 너무 크다

  • 입력 1999년 10월 6일 18시 43분


역시 ‘방사능 재앙’은 남의 일이 아니다. 4일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중수(重水) 누출로 작업자 22명이 방사능에 쏘인 사고가 이를 다시 한번 말해준다. 불과 그 나흘 전 일본에서 핵분열 연쇄반응으로 방사능이 대량 누출된 임계(臨界)사고가 터졌을 때 우리 정부는 뭐라고 했던가. 한국전력은 정부의 주문에 따라 ‘우리 원전은 안전하게 운전되고 있으며 사고 위험은 없다’는 내용의 광고를 각 신문에 실었다. 바로 이 광고가 나간 날 월성원전 사고가 터졌다.

이번 사고에 대해 한전과 과학기술부는 작업자들의 방사능 피폭량이 경미하다고 강조하기에 바쁘다. 피폭 정도가 가볍다니 불행 중 다행이다. 하지만 원전의 잦은 고장이나 사고를 그런 식으로 하찮게 생각하다가는 언제 어디서 치명적 대형사고를 맞을지 모른다. 최근 3년간만도 국내 원전의 사고나 고장으로 원자로가 정지된 경우가 52번에 이른다. 월성 원전에서만도 84년 이후 7건의 중수누출사고가 있었다.

이처럼 사고가 잇따라 일어나는데도 원전 안전규제는 오히려 느슨해졌다. 올 1월 개정된 원자력법의 내용이 이를 잘 보여준다. 원래 원자력법에 명시돼 있던 안전관리규정(49조) 핵연료물질취급책임자 관련규정(50∼52조) 핵연료운전계획서 제출의무규정(48조) 원자로 및 관련시설 성능검증 관련규정(42조 2,3항) 등이 개정된 원자력법에서는 삭제됐다. 원전 안전규제를 강화하는 세계적 추세와는 정반대다. 이는 정부 규제개혁위원회가 규제완화 건수를 늘리기 위해 원전의 핵심적 안전규제조항까지 마구잡이로 손댄 결과라니 더욱 놀랍다.

한편 월성 원전 책임자들은 이번 사고가 생긴 뒤 신속보고의무조차 지키지 않았다. 원자력시설에 고장이 생기거나 방사성물질 등에 위험이 발생할 경우 사업자는 지체없이 과학기술부장관에게 보고하도록 원자력법에 명시돼 있다. 그런데도 이 사고는 하루 동안 보고되지 않았다. 일본 임계사고의 경우 사고 발생후 보고까지 1시간이 걸렸다고 해서 관계자들이 엄하게 비판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만의 하나 대형사고가 났을 때 얼마나 신속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일선 작업자들의 안전의식에 대해서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2일자 본란에서 지적했듯이 관계당국은 원전 안전실태를 엄격하게 재점검해 사고의 소지를 철저히 없애야 한다. 또 모든 원전 관계자들에 대한 안전교육 및 전문적 직무교육을 강화해 사고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각 원전에 대한 정보를 숨기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 특히 지역주민들의 불안과 불신도 해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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