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최재천/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 입력 1999년 10월 1일 19시 13분


▼ '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지음/ 사회평론

서양 사람들은 부지런한 동물로 비버와 개미를 든다. 그러나 사실 비버는 하루에 5시간 이상 일하지 않는다. 개미도 군락 전체로 보면 늘 바삐 움직이고 있지만 일개미만 따로 놓고 보면 쉬는 시간이 더 많다.

최근 프랑스 정부가 근로시간을 주당 35시간으로 줄인다고 발표해 세인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일주일에 5일을 근무한다고 볼 때 직장에서만 하루 평균 7시간을 일하는 셈이다.

지금보다는 훨씬 한가했으리라고 생각되는 반세기 전에 이미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기술문명의 발달로 노동구조를 개선시켜 보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색하면서 ‘무용한’ 지식을 창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왜 문명의 이기는 속속 발명되어도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숨가빠지는 것일까.

얼마전 두 동료 교수가 박봉과 잡무로 인해 연구에 전념할 수 없다며 서울대를 떠났다. 걸핏 하면 ‘공부 안하는 대학교수’라는 질책을 받는 주제에 할 얘기가 아닐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교수들은 너무나 빈둥거릴 시간이 없다. 빈둥거리며 사색할 시간은 커녕 숙제만 하기에도 하루해가 모자란다. 이건 노동이지 연구가 아니다.

창조적인 일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빈둥거릴 수 있는 시간을 찾아주지 않는한 결코 선진국을 따라 잡을 수 없다. 우리가 남보다 일을 덜 해서 IMF사태를 맞은 것은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늦었다고 전보다 더 정신없이 앞만 보며 뛰고 있는 우리들을 보라. 곧 또 넘어져 무릎을 깰 일이 불을 보듯 뻔하다. 천규석님의 말처럼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다. 반성적 게으름을 부르짖던 러셀의 지혜가 다시금 아쉽다.

최재천(서울대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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