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양봉민/의보통합은 복지증대 첫걸음

  • 입력 1999년 9월 29일 18시 40분


문화와 경제수준이 서로 달라도 세계 모든 나라가 공통으로 채택하는 사회보험으로서의 의료보험의 원리는 ‘능력에 따라 부담하고 필요에 따라 의료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를 위시한 모든 국제기구와 모든 국가가 채택하는 원칙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보험 통합이 이루어지면 모든 직장인은 동일한 보험료부담 체계의 적용을 받는다. 즉 월 100만원 소득자는 대기업 사원이든, 중소기업 직원이든, 금융기관 종업원이든, 공무원이든 동일한 보험료를 내게 된다. 현행 방식에서는 직종에 따라, 그리고 같은 직종에서도 직장에 따라 월 100만원 소득자가 부담하는 보험료가 달랐다. 어느 기업의 150만원 소득자는 다른 직종의 100만원 소득자보다 오히려 적은 보험료를 내기도 했다. 조합 통합이 이루어지면 이러한 불공평한 부담의 여지는 없어진다.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부담시키자는 것이 의료보험 통합의 근본 취지이다. 조세체계 개선을 통해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이 높아지면 직장인과 자영업자간에존재하는불공평의여지도 단계적으로 개선이 가능하다.

직장단위보험과 지역단위보험이 합쳐지는 이유는 우리가 상부상조해야 할 부모와 형제가 지역에 있고 모든 사람이 잠재적으로는 지역의료보험의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평균적인 한국인은 60세 정도에서 직장을 그만두면서 의료혜택을 위해 지역의료보험에 편입된다. 직장인과 지역의 자영업자들이 모두 한 울타리에서 질병의 위험에 공동 대처하자는 것이 통합 의료보험이다.

60세에 직장에서 은퇴하여 지역의료보험으로 옮긴 후 65세의 나이에 큰 수술을 받고 지역의료보험에서 보험급여 혜택을 받아야 한다면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이것이 전적으로 지역의료보험만의 문제인가? 직장과 지역 의료보험의 통합은 직장에 근무할 때 낸 보험료를 지역에서 혜택받을 수 있다는 세대간의 공평을 의미하기도 한다.

의료보험의 통합은 의료보험이 사회안전망 기능을 더욱 충실히 하게 하는 발전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국민을 질병의 경제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특히 부담능력이 약한 계층의 경제적 위험을 덜어주자는 상호부조 장치이다. 이러한 의료보험을 두고서 내가 낸 돈, 네가 낸 돈을 가리는 것 자체는 사회보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아니면 집단 이기주의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진료비의 상당액을 본인이 직접 부담하는 현행 의료보험제도는사회안전망 기능이 매우 취약하다. 3000만원 진료비 중에서 2700만원을 본인이 부담하고 300만원이 보험에서 급여되는 극단적인 사례마저 있다. 의료보험 통합은 이러한 보험제도의 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첫 단추에 해당한다. 역설적일지는 모르지만 경제가 풍요로울수록 제대로 된 사회안전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의료보험이 사회안전망의 핵심인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온 국민, 특히 부담능력이 약한 국민을 질병에서 비롯되는 경제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면 의료보험은 반드시 개혁돼야 한다. 통합은 보험 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양봉민(서울대 교수·보건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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