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권희로와 '왕서방'

  • 입력 1999년 9월 14일 18시 38분


로마인들은 유럽인 치고 몸이 비교적 작은 편이다. 지적 능력이 특별히 우월하지도 않다고 한다. 그런 로마인들이 고대(古代)에 거대한 로마제국을 형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하나의 수수께끼다. 군사력이었을까. 아니다. 다른 민족의 문화를 존중하고 이를 포용하는 흡인력이라는 분석이 그럴듯하다. 이러한 분석은 미국이나 중국같은 오늘날의 다민족국가에도 어느 정도 들어맞는 말이다.

▽권희로(權禧老)씨로 상징되는 민족차별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족이나 인종차별은 일본 미국 등 외국에서만 저질러지는, 우리하고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우리나라 장기거주 외국인 가운데 97%인 2만1000여명이 화교(華僑)다. 이들은 1950년대 한때 50만명을 헤아렸다. 화교가 이처럼 급감한 이유가 뭔가. 바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화교의 급감현상은 우리가 화교를 어떻게 대해 왔는지를 말해준다.

▽처음 한국에 온 중국인들이 갖는 의문이 세가지 있다고 한다. 웬만한 나라에 다 있는 ‘차이나 타운’이 없는 점, 화교 가운데 대기업가와 부호가 없는 점, 해외로 빠져나가는 화교가 끊이지 않는 점. 법적 사회적 차별대우의 결과다. 북한에서도 차별을 견디다 못한 화교들이 두만강을 건너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남북이 어쩌면 이렇게도 닮았을까. 국제사회에서 ‘차별의 땅’이란 악명이 붙지 않을까 걱정이다.

▽화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인 조선시대 고종시절이었다니 이미 한 세기를 넘겼다. 그들을 포용하지 못한다면 문화민족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왕서방’을 우리의 이웃으로 맞아들일 때 우리는 성숙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지구촌은 한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육정수 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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