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1차대전 발발]사라예보 암살사건 현장

  • 입력 1999년 9월 8일 20시 02분


사라예보 교외의 한 3차로 도로. 1차대전의 불씨가 된 암살사건 현장에는 이제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간단한 표지판조차도 볼 수 없다. 사라예보 시내 관광책자에도 이곳을 소개하는 구절은 전혀 없다. 차들이 달리는 길 옆에는 길이 10m 폭 3m의 다리가 하나 나 있었다. 세르비아의 암살범 프린치프가 황태자를 기다렸다가 쐈던 자리다.

다리 맞은편에 서 있는 3층짜리 허름한 건물을 가리키며 가이드는 “한때 프린치프 박물관으로 쓰였던 건물”이라고 말했다.

프린치프는 황태자를 저격한 이후 세르비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현장의 프린치프 발자국을 석고로 떠서 박물관 앞에다 전시하기도 했다. 박물관은 오랫동안 세르비아 어린이들의 견학코스였고 교과서에도 프린치프의 ‘영웅적인 투쟁’이 실렸다.

그러나 이제 박물관에 프린치프에 관한 기록은 없다.암살에 사용했던 총과 기타 기록 문서들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90년대 내전이 터진 뒤 세르비아 지역이었던 사라예보가 이슬람 관할지역으로 바뀌면서 프린치프 박물관은 문을 닫았다. 역시 프린치프 이름을 땄던 다리도 다른 이름으로 변경됐다.

세르비아계인 비나 마슈코비치 할머니는 “10년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프린치프에 대해 많이 배웠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누군지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프린치프는 재판 당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나이가 어려 집행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밀폐된 감방에서 쇠사슬에 묶여 지내다가 몇년 뒤 폐결핵으로 죽었다.

한편 ‘피살자’ 페르디난트의 유품은 빈에 고이 보존돼 있다. 빈 시내 육군 박물관에는 페르디난트의 피묻은 옷과 사건 당일 탔던 자동차가 진열돼 있다.

역사는 두곳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사라예보〓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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