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상균/서민복지정책 또 미룰건가

  • 입력 1999년 8월 30일 19시 16분


국어 사전에 의하면 선심은 악심의 반대어로 ‘선량한 마음, 남에게 베푸는 후한 마음’이라고 정의된다. 그러나 선심행정 또는 선심정책이라는 복합명사에서는 선심의 의미가 삽시간에 좋지 않은 뜻으로 둔갑해 버린다. 불요불급한 것에 예산을 쓰거나 정부가 반드시 책임지지 않아도 될 시책을 펴면 선심정책이 되는 것이다.

정부가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이후 서민층 및 소외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을 발표하자 일부 언론은 민심 달래기 선심정책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나섰다. 복지정책이 시기상조라는 주장이다. 70,80년대의 개발독재시대에 귀 따갑게 듣던 ‘선성장 후분배’ 또는 ‘복지의 재정중립’이란 구호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시급성 우선순위 국가책임성 등을 둘러싼 논거는 가치관에 따라 차이날 수 있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이를 복지이념의 기준 범주라고 부른다. 단순하게 보면 복지이념은 친복지이념과 반복지이념으로 대별되는데 ‘선성장 후분배’‘복지의 재정중립’‘복지투자 시기상조’ 또는 ‘복지정책 선심정책’론은 반복지이념의 족보에 속한다.

경제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작년에 국민을 진실로 불안하게 했던 점은 허술한 사회 안전망이었다. 일시에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국가의 보호망이 없어 사회적 해체, 또는 붕괴의 가능성은 금융위기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위험했다.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서도 최소한의 국가복지가 필요하다.

최악의 위기 국면은 모면한 것 같지만 예상치 못했던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다름 아닌 빈부격차의 심화다. 소득분배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97년 0.2831에서 98년에 0.3157로 급격하게 악화된 것이다. 여러가지 사회지표의 변동상태를 점검해보면 사회 기반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혼율 범죄율 질병이환율 가족해체율 등에서 사회가 망가져 가고 있음이 나타난다.

국제통화기금(IMF) 국란의 최대 희생자인 실업자와 저소득층, 고통을 분담한 봉급 생활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필요한 시기이다. 시기를 놓치면 계층의 양극화 현상이 누적적으로 심화돼 또 다른 사회적 위기를 맞게 될지 모른다.

서민보호 대책은 시기상조가 아니라 오히려 때늦은 것이다. 수십년간 역대 정부가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었던 정책들의 일부를 처리한 것이기 때문에 선심정책이 아니다. 더욱이 국민의 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수행을 놓고 선심정책이라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국가 복지수준이 국가경쟁력에 비해 턱없이 뒤떨어진 이유의 하나는 지도층인사 대다수가 반복지 이념의 지지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지도층에 일부 언론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밝혀졌다. 올바른 여론의 형성과 여론의 정확한 전달을 책임져야 할 언론사들이 구시대의 잔재인 반복지 이념을 가지고 다음 세기 민족의 장래를 선도해서는 안될 것이다.

김상균<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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